인터뷰│박광석 기상청장
"기후위기 최전선, 행동하는 파수꾼 되겠다"
홍수피해 막기 위해 예보토의에 홍수통제소 참여 … 통합물관리 핵심 수문기상 활용 높일 것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상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뭐냐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을 했고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시기인 만큼 기상청의 새로운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박광석 기상청장(54)은 "기상청은 파수꾼"이라며 "제대로 된 기후 정보를 더 면밀하게 제공해 위기상황에 제때 대응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정책 결정이 가능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청장과의 인터뷰는 20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이뤄졌다.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데, 기상청에서 실질적으로 정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대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산업이나 에너지 등 전분야에 걸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이고 객관화된 자료들로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선행되어야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기상청의 역할은 파수꾼이다. 파수꾼은 위험 재난 기후위기 등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지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보가 있어야 올바른 의사결정도 할 수 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담당부처다. 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AR6) 워킹그룹(WG)1 보고서 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WG1 보고서는 기후전망이나 기후위기 원인 등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 분야를 평가하는 보고서다. 특히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새로운 기후전망 생산이다. 미국 중국 영국 독일 등 전세계 10여개국이 참여 중이다.
보고서 승인 전 마지막 일정인 5, 6월 보고서 최종 검토가 진행될 때 국내 전문가와 함께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한 8월 보고서 승인 총회에서 핵심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보고서의 질적 향상에도 기여해 의장국으로서 위상도 높이겠다.
WG1보고서가 최종 승인 되면 기상청 주관 'IPCC 국내 대응 협의회'를 통해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관련 국내 정책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해나가겠다.
■탄소-항공교통-기상정보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항공교통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율주행기술과 더불어 미래 항공교통서비스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도 항공교통 현황을 고려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해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항공기상청에서도 '차세대 항공교통 지원 항공기상 기술개발(NARAE-Weather)'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항공운항에 필요한 텍스트나 단순 이미지 정보를 공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항공기의 실시간 위치와 시간을 고려한 상세 항공기상정보 제공 등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달라지는 시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항공기상서비스를 제공한다. 드론 택시 등 향후 도심 항공 교통 수요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저고도 상담관 제도를 운영 중이다.
헬기나 경비행기 등 저고도(1만피트 이하)로 운항하는 항공기 안전을 위해 맞춤 기상 정보(1회/1일)를 제공한다. 나아가 올해 말 저고도 콘텐츠 개발 및 종합플랫폼을 구축해 저고도 항공기 안전운항을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
■탄소중립과 함께 해상풍력 활성화에 속도가 나고 있다. 해상풍력발전기 설치 등 관련해서 해양기상부이 중요성도 높아졌다.
파고 바람 수온 등 축적된 해양기상부이의 관측자료들은 기후위기를 감시하는 역할과 함께, 유관기관이나 민간에서 기후위기 대응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해양기상부이의 자료 활용범위를 넓혀 최근 부각되는 해상풍력 발전 같은 신·재생 에너지산업 분야 등 저탄소·친환경 경제 지원을 위한 기초자료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서해상에서 유입되는 집중호우 폭설 황사와 같은 위험기상을 조기에 감시하고 어업과 선박의 안전운항에 핵심요소가 되는 해양기상관측망 확충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기상청은 해양부이 23대를 운영 중이다. 이 중 대형부이는 4대다. 대형부이의 경우 육상에서 100~200km밖의 해상 상태 관측도 가능하다. 먼바다의 위험기상을 조기에 감시할 수 있다. 2023년까지 약 100억원을 투자해 대형부이 8대를 추가로 도입해 운영할 예정이다.
■최근 기후위기 관련 역할이 부각되었지만 기상청의 근간은 예보 정확도 아닌가.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촘촘한 관측망과 성능 좋은 수치예보모델, 예보관의 우수한 역량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지형과 기상 특성을 반영한 한국형수치예보모델 정확도 향상과 고도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독자적인 수치예보모델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9개 국가 뿐이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도 할 것이다.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 정책 디자인단'을 운영해 예보정확도 평가방법을 체감할 수 있도록 개선할 예정이다. 또한 기후위기로 변동성이 커진 날씨정보를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 국민생활 불편해소와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난해 홍수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합물관리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름철 홍수 피해 우려 시기에는 홍수통제소 직원들과 기상청 직원들이 호흡을 함께 하면서 재해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예측강수량 결과만을 공유해서는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다.
맞다. 예보 결과만을 받고 댐수위를 결정하는 경우와 강수량 예측을 위한 백그라운드를 이해하고 댐 운영을 판단하는 일은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올해부터는 댐 사전 방류 검토를 위한 초기 단계부터 기상청 예보 토의 현장에 홍수통제소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예보 생산 과정과 다양한 위험기상 시나리오에 대한 선제적 소통도 병행한다. 홍수기인 6~9월 기상예보와 홍수예보 담당자간 사전 영상토의와 긴급 유선 연락망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인한 국민들의 큰 피해를 교훈 삼아 물관리 유관기관과의 소통과 협업을 강화 중이다. 이달 말에는 환경부 국토교통부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함께 홍수 대비 모의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지난 1월에는 환경부 홍수통제소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국장급 정책협의회를 연 뒤 협업담당관으로 구성한 실무협의회를 운영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와 관측자료 협업 시스템도 강화할 계획이다. 3월부터 한국수자원공사가 보유한 강수량 관측자료 186개를 1분 단위로 수신 중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관측 환경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한국수자원공사의 관측 장소를 활용해 강수량뿐만 아니라 온·습도계 등이 포함된 기상청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다. 6월 한국수자원공사 관할지역인 금강 유역 상전 지점에 AWS를 시험 설치할 예정이다.
■통합물관리 시대, 좌절됐던 수문기상 활용에 관한 법률안 제정도 재논의해볼 수 있지 않나. 물관리와 재해예방을 위해서 수문기상정보의 효율적인 공유는 필요하다.
수문기상은 물순환의 핵심정보다. 기상예보부터 홍수·가뭄 대응까지 효율적인 물관리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해 수문기상정보의 활용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수문기상정보 관련한 내용을 포함해 기상법 전반에 걸쳐 보완해야 할 점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기상법을 보면 '기상업무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등(제2장)'에 방점이 찍혀있다.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관련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기상청 업무를 어떻게 할까의 관점으로 법이 구성되어있다. 이를 좀 바꿔볼 필요가 있지 않나 고민 중이다.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춰 시민들이 원하는 부분이 법에 담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 변덕스러운 '엘니뇨' AI로 잡는다
▶ "어? 하늘이 맑아졌네?" 황사바람의 역설
▶ [중앙·지자체 기후위기 협력 강화] 폭염 피해 대응 위한 영향예보 음성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