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부모 인터뷰

"하루만 아이보다 오래 살았으면"

2022-06-03 11:06:39 게재

부모 심리·정서치료도 절실

24시간 지원, 국가책임제 요구

자폐성장애 2급 10살 아들을 키우는 한 모씨는 지난 10년간 밤 외출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도 잠깐 사이 도로로 뛰어드는 아들 때문에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일 내일신문과 만난 한씨는 "아이마다 (자폐는) 다르지만 분명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길로 끌어주는 것은 가정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걸 사회가 연결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대한민국 현실이 암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는 아들을 특수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뽑는 인원이 적어 입학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몇 차례 편지도 쓰면서 애써 봤지만 심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한씨는 발달장애 가족의 심리·정서 치료 지원도 절실하다고 했다. 고립된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의 마음이 병들어 가는데 만약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분들이 정신과와 의료적 지원을 받았다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한씨는 "아이랑 고립되고 내 삶과 내 시간이 없어지는 것 같은데 사회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우리를 얼마나 지원해 줄 수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18세 자폐 자녀를 둔 남 모씨는 발달장애 활동지원사 지원 시간을 늘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를 혼자 놔둘 수 없는 상황에서 활동보조가 꼭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월 90~100시간이 주어지는 활동보조는 토·일요일을 빼면 하루 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시간으로는 엄마가 꾸준히 무엇인가 할 시간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활동지원사 보수가 높은 편이 아니어서 좋은 보조 선생님을 만나기 힘들다고 했다. 또 돌보기 힘든 중증장애인을 꺼리는 경향도 있어 더욱 인연이 맞는 활동보조 선생님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남씨는 "나 없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나같은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며 "아이가 나이 들어 양로원 같은 곳에서 지내도 안심할 수 있는 지역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진 곳에서 사람답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졸업 이후가 더 걱정 = 자폐성장애 2급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는 유 모씨는 돌발행동이 심한 아들의 행동 원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단 1초도 가만 있지 못하는 혈기왕성한 아들을 돌보는 게 5살짜리 치매 환자를 키우는 것 같다고 했다.

유씨는 "마음 지치고 힘들 때 부모 상담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이를 키우며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다는 부모도 있다.

자폐성장애 15세 자녀를 키우는 김 모씨는 6시간 잠을 자면 한두 번을 꼭 깬다고 했다. 아이가 13살이 될 때까지 밖에 나가면 손을 놔본 적이 없었고 지금도 쓰레기를 버리러 집을 나갈 때 외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데리고 다닐 사람이 없어 개인 생활이나 취업은 생각만 했지 실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부모인 선천성 자폐 1급 18살 아들을 키우는 박 모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평생교육원이 구별로 하나씩 있지만 뽑는 인원도 적은데다 5년밖에 다닐 수 없어 성인이 된 이후가 더 불안하다고 했다.

30대 자폐자녀를 둔 고봉자씨는 "돌봄을 부모가 전담하다시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24시간 지원 체계와 발달장애 국가 책임제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한 번에 다 된다고 생각하지고 않고, 당장 실행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급한 부분부터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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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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