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발표 요란했지만 예산·의지 부족
실효없는 대책 반복에 발달장애가족 비극 되풀이
실태 전수조사 통해 개인별 맞춤형 지원 제공해야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생활을 통합 지원하는 서비스 제공의 법적 근거를 담은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17곳에 설치된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통합돌봄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 단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개정된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 신뢰하지 못하는 탓이다.
개정안에는 최중증 장애인에 대해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조항만 마련돼 있을 뿐 지원 대상이나 기준, 지원방법 등은 담겨있지 않다. 최중증 장애인을 지원하려면 당연히 예산이 필요하지만 비용추계도 없었다. 게다가 시행 시기도 당초 공포 후 6개월 후가 유력했으나 법안 논의과정에서 2년 뒤로 대폭 늦춰졌다. 시행령을 통해 지원방안이 구체화되어야만 실효성을 따져볼 수 있을텐데 그럼에도 벌써부터 법 추진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이유다.
장애인 단체들이 발달장애인지원법 개정안에 선뜻 기대를 갖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대책을 내놓아도 예산이 뒷받침하지 못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서울과 인천에서 발생한 발달장애인 가족의 극단적인 선택처럼 비극이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되면 이런저런 지원방안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정된 것은 지난 2014년.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의 권리가 명시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의무가 부여됐다. 당시 정부는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에 따른 비용을 5년간 4000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 법이 본격 시행된 2016년 배정된 예산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구축 비용 50억원을 포함해 총 95억원 가량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017년 90억원, 2018년에는 85억원으로 줄었다. 지원법을 만들었지만 예산이 뒷받침하지 못해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8년 9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은 범정부 차원의 발달장애인 종합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에는 발달장애 조기진단 및 보육·교육서비스 강화, 학령기 발달장애인 맞춤형 교육지원 강화 등 10대 과제 24개 세부과제가 담겼다.
하지만 이 가운데 예산이 확보돼 실질적으로 추진된 것은 주간활동서비스 등 발달장애인 활동지원 사업 정도다. 필요한 서비스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평생 발달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단체들은 발달장애 특성상 개인별로 종합적이면서도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적이 없다.
정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 방침을 밝힌 것은 지난 4월에서였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는 발달장애인 돌봄지원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년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정부는 올해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에서는 윤석열정부로 교체되면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전수조사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장애인 지원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의지가 이전 정부에 비해 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가 돌봄 모델 확대, 활동지원서비스 사각지대 해소 등을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장애인 단체에서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과제는 빠져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국장애인 부모연대 윤진철 사무처장은 "그동안 정부는 사람이 아니라 예산을 중심에 두고 장애인 지원대책을 마련해왔다"며 "그러다보니 지원책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으로 이뤄져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24시간 생활을 하면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파악해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우선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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