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한 의사 인력

의료 붕괴 중 … 의사인력 늘려야 할 골든타임

2023-05-30 10:59:46 게재

정부 '의사부족' 문제 해결에 미적, 사실상 방치 … 국민-환자 위협, 의료종사자-병원도 고통

2006년부터 의대정원을 3058명으로 제한하고 늘리지 않은 결과 의사부족으로 의료현장은 국민과 환자에게 수준 높은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군구 지역사회에서 일차의료와 응급의료 영역에서 의사가 부족하다. 지속적으로 주민의 건강 상담과 경증질환 관리 등을 담당하거나 응급상황에서 긴급히 진료·처치하는 의사군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매우 부실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유행 시기 지방공공병원에서 중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의 부족도 목격했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으나 의사인력 부족은 공공-민간의료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인된다. 높아진 인건비는 병원 운영을 위협한다.
또한 초고령사회 진입과 노인인구 급증에 따른 만성질환관리와 지역사회 의료-돌봄통합, 장애인건강주치의사업 등에 필요한 적정 의사인력까지 고려하면 의사인력 부족 현상은 가중된다.
의사 수를 늘리고 필수분야 인력의 양성·배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관련해서 의사인력 문제를 살펴보고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의료진들이 코로나19 중환자실에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 일산병원 제공


의사인력 부족으로 전국 곳곳에서 의료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국민과 환자의 건강은 위협받고 있으며 병원 내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병원 운영에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금이 의료붕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으며 정부는 의사인력 확충을 시급히 추진할 핵심과제로 삼아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29일 "병원과 병상은 자유롭게 늘리면서 의사를 늘리지 못하는 의료제도는 국민뿐만 아니라 더 이상 병원과 의사에게도 유리하지 않게 됐다"며 "일차의료, 응급의료 영역과 지방에서 활동할 의사 배출을 늘리고 의사수급 불균형과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나쁜 의료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사정원은 예상추계에 따라 늘려야 한다"며 "(신규 확보에 시간이 걸리므로) 당장은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들이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비급여와 급여 진료를 같이 할 수 있는 혼합진료를 일본처럼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5일 보건의료노조가 의사인력 확충 등을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보건의료노조 제공


◆의사부족이 낳은 병폐 심각 = 우리나라 의사 수 부족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 2022'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한의사 제외하면 2.0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7명보다 1.2명(한의사 제외하면 1.7명)이나 적다. 의대정원을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한 결과다.

한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12일 밝힌 99개 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병원들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정원 부족은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특수목적공공병원>민간중소병원>지방의료원 순으로 나타났다.

정원 대비 의사부족이 많은 곳은 106명 까지 차이 나는 곳이 있는데 국립대병원이었다. 사립대병원 최대 격차는 73명으로 나타났다. 병상규모를 고려하면 공공병원 의사인력 부족이 매우 심각했다. 이로 인해 필수의료 제공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진료 차질이 발생하는 진료과는 산부인과(26곳)>소아청소년과(24)>흉부외과(23)>비뇨기의학과(22)>일반외과, 정형외과(21)>일반내과(19)>응급의학과(17)>신경외과(17) 등 순으로 나타났다.

국립-사립대병원이 권역책임의료기관이나 권역의료센터 역할을 수행할만한 의사인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립대병원의 의사부족은 공공임상교수제를 시행하기 버거운 상태를 보여준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지방의료원이 호흡기전문 의사를 구하지 못하거나 산재환자를 위한 재활전문병원인 근로복지공단병원에 재활의학과 의사가 부족한 현실이다.

일반인은 대학병원 의사의 수입이 많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동네의원 의사의 수입이 1.7배 더 많다. 병원 의사들은 의사부족에 과다업무를 겪고 응급의료 등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병원 스펙을 쌓고 의원으로 개원하곤 한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정형외과의사가 수술을 하지 않고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하지 않게 됐다"며 "대학병원 의사인력은 수익성이 높은 비급여 진료를 하기 쉬운 동네의원으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병원 내 의사 부족은 환자 진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건의료노조 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은 의사부족으로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적절한 시기에 수술이나 시술 처치를 받지 못하거나 응급환자 대처가 늘어지고 투약과 처방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야간-주말-공휴일 진료와 응급진료는 당연히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의사부족으로 의사들도 업무과다와 쉬지 못하는 근무환경으로 고통받는다. 또 진료지원(PA)간호사 등 다른 종사자들도 의사 일을 떠넘겨 받게 돼 업무과다에 시달리게 된다. 부족한 의사인력 확보를 위해 병원 측은 높은 연봉을 챙겨야 하는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다.

대형병원-수도권 의사인력 쏠림은 지방병원 의사 부족을 가속화하고 지역민은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보건의료서비스 격차를 경험한다. 아픈 몸으로 수도권으로 간다.

◆의대 정원확대-공공의대 필수 = 의사인력 확충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그런데 정부가 미적거린다.

2020년 문재인정부는 의대정원을 2022학년부터 10년간 4000명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윤석열정부도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필요 의사인력를 확보할 것을 밝혔다. 하지만 눈에 드러나는 성과는 아직 없고 정부는 의사협회와 논의라는 협소한 논의구조를 가져가면서 의사인력 확충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신속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12일 우수한 의사인력을 안정적으로 확충 공급할 수 있도록 공공의대 설립-지역의사제 추진-공공임상교수제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필수의료 영역에 대한 국가책임, 의사인력 수도권·대형병원 쏠림 해결, 공공병원의 의사인력 확보 그리고 공중보건장학생 지원제도를 대폭 확대하고 내실화를 제기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의료기관 과잉공급과 무분별한 개원 허용은 의료기관 과잉경쟁과 대형병원 의사 쏠림, 구인난을 심화시킨다"며 "지역별 병상총량제와 개원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윤 교수는 "하루빨리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 지방과 의료취약지의 부족한 의사 확보를 위해 의대 정원 2/3 이상을 해당 지역 출신으로 선발하고 매년 500명 정도 는 졸업 뒤 의료취약지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PA간호사·외국의사 수입·한의사 활용 제기 = 의대정원 확대와 더불어 지금 의사 부족으로 생기는 보건의료서비스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안 검토와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의료 질과 시스템 향상을 위해 의사도 늘리고 PA간호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PA간호사가 제도화되면 지금 PA간호사가 하고 있는 70% 정도 일은 유지될테지만 수술 시술 같은 30% 정도는 PA간호사가 하지 못하게 된다. 전문간호사가 담당하는 것이 합당하다. 관련해서 간호인력의 업무범위를 법적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국 1만명 정도의 PA간호사가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이미 공공연하게 의사 역할을 일부 대신하고 있는 PA간호사를 제도화하면 의사를 6만∼8만명이 아니라 절반 수준의 3만∼4만명으로 늘려도 된다"고 강조했다.

의사인력이 확충되지 않으면 외국인 의사 수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 회장은 "미국도 1/3이 외국 의사 인력으로 채운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안된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다"며 "의사인력 확충을 서두르든지 아니면 외국 의사 수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현재 지방의료는 붕괴 중"이라고 말했다.

한의사 인력이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에 참여하거나 의료일원화 등을 통해 일차의료와 통합의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경기 고양지역에서 지역사회통합돌봄 활동 중인 노태진 고양시한의사회 정책부회장은 "지역사회통합돌봄은 보건 요양 복지 고용 교육 문화 체육 주거문제를 통합해서 노인과 장애인을 포함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일차의료 강화, 장애인건강주치의사업, 방문진료사업 등 한의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며 정부는 한의사들이 참여할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초고령사회는 시술과 투약에 집중된 의사인력의 활동에 변화를 요구한다. 의료일원화를 통한 한의사 인력 활용은 부족한 의사인력 확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인력 확충, 심의기구서 결정해야 =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의사인력 확충 방안에 대해 결정된 바 없으며 의사협회와 협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른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가 있는데 국민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의사인력 확충 논의가 의사단체와 정부의 협의로만 이뤄진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의사단체는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엄중한 시기에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에 반대해 파업을 진행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의사인력 확충 과제는 의사단체에게만 맡겨진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국민적 과제"라며 "정부·의사단체만 아니라 의료계, 병원노사와 시민사회단체 환자단체 지자체 전문가 등이 참가한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논의와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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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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