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동네에 '장애'를 아는 의사가 없다

2023-05-30 10:59:46 게재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지난달 한 지인의 부고장을 받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지내던 재활원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는 느닷없이 죽음으로 안부를 전해왔다.

그의 사인은 암이었다. 그런데 그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기까지의 사연을 듣고 기가 막혔다. 양하지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사용했던 그는 장애후유로 인해 척추측만증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척추통증을 달고 살았던 그는 어지간한 통증은 진통제 한두알로 견뎠다. 그러다 올초 진통제조차 듣지 않는 격한 통증으로 고생하다 실려간 병원에서 그는 느닷없이 암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겪었던 통증이 암 때문이었는지, 장애후유 때문인지조차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가 사는 동네에 마실 가듯 찾아가 통증을 상담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의사는 없었다.

건강주치의, 시범사업만 반복

2017년 12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국립재활원 '장애와 건강통계'에 따르면 2016년 당시 장애인의 조사망률은 비장애인의 5배, 평균수명 또한 10년 정도 짧았다. 장애인 77.2%가 고혈압 당뇨 등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았다. 그럼에도 진료비는 1인당 연 439만원으로 전국민 평균 125만원의 3.5배, 노인 344만원의 1.3배에 달했다.

지난 정부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돌봄 수요와 의료비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를 준비했다. 그 안에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를 포함했고 제1차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비로소 장애인 건강관리를 위한 의료 환경체계를 갖추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와 건강을 주치의로부터 관리받게 되었다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제1차 시범사업의 결과는 부실함을 드러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장애인건강주치의제 시범사업의 부실함이 지적됐다. 1년 동안 등록주치의 268명 중 활동한 주치의는 48명인 15%이고 이들 주치의가 302명 장애인 환자를 관리하고 있어 1인당 평균 6명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실한 시범사업 결과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 이어졌다. 제2차 시범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제1차와 별반 차이가 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6년이 지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건강 격차는 여전했다.

국립재활원의 '2022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고혈압 당뇨가 2.6배, 심장질환 3.2배, 대뇌혈관 질환 4.8배, 암 2배 차이 났다. 심각한 것은 정신건강학과 질환이다. 우울증이 3배, 불안장애가 2.5배, 치매는 7.6배나 된다. 1인당 연 진료비는 장애인 632만4000원으로 비장애인보다 4.1배나 많았다.

새로운 정책이 효과있는 제도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본사업을 시행조차 하지 못했다. 국가의 의지나 함께 해야 할 의료계의 방임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부 의료계 방임 행위 멈춰야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과 진료수가였다. 진료수가는 의료계의 불만이 만만치 않다. 건강주치의 진료수가를 높이면 본인부담금이 늘어나 결국 장애인의 의료비도 증가해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죽음으로 내게 안부를 전했던 그가,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를 일찌감치 이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건강주치의를 찾아 자신의 통증을 상담했을 것이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의료적 처지를 받았을테니 살았을지 모른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 역시 동네에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병원도 장애와 건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할 주치의도 없다. 모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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