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고착화 우려 … 실물·금융 전반에 악영향
중동발 정세 불안, 국제유가 변동성 커져
서민생활·소비회복 타격 … 고금리 지속
대통령·부총리·한은 총재까지 위기감
10월 소비자물가 3.8% 상승
고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소비와 투자, 수출이 회복돼 경제 전반에 선순환을 불러오겠다는 정부 구상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2023년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에 비해 3.8% 상승했다. 지난 7월(2.3%)까지 물가 오름세가 둔화됐던 것에서 석달째 역주행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올해 경제가 '상저하고'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안팎으로 비교적 안정돼 연간 3% 중반대에 그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올해 남은 두달과 내년 이후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가장 큰 변수는 중동발 국제유가 변동성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WTI(서부텍사스유) 기준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지만 변동성이 크다. 9월 말에는 93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 수입비중이 큰 두바이유는 배럴당 85달러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일 "내년 유가를 84달러 정도로 예상했는데, 90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한은의 물가 예측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8월 물가 전망에서 올해 하반기 3.0%, 연간 3.5% 수준으로 예상했다. 내년에는 연간 2.4% 수준에서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예상에 기초해 통화정책방향 등을 결정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이르면 내년 중반쯤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물가 오름세가 내년 이후 지속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달 회의에서도 물가안정 목표를 주된 과제로 하면서 추가 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열어둬야 한다는 데 사실상 일치했다.
서민생활을 안정화시켜야 하는 정부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치명적이다. 특히 이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서민생활과 직결된 생활물가지수가 지난해 동기에 비해 4.6%나 상승하면서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내년도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 입장에서 서민생활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모든 정책이 '백약이 무효'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와 이상 저온 등으로 예상보다 물가 하락 속도가 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모든 부처가 물가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은 그러면서 "아직 글로벌 인플레 압력이 높고 지정학적 불안 요인에 따른 불확실성도 상존한다"며 "정부는 분야별 취약부문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과 공조해 신속 대응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주부와 회사원, 자영업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재정을 더 늘리면 물가때문에 또 서민들이 죽는다"면서 카카오택시의 과도한 수수료와 은행권 고금리 등에 직접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농축수산물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3% 올라 전달(3.7%)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채소류(5.3%)를 비롯한 농산물이 13.5%나 급등해 2021년 5월(14.9%) 이후 2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올해 이상저온 등 기상 여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채소와 과실 등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는 12.1% 올랐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3.6%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3.2% 올랐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전기·가스·수도 가격이 지난해 10월 요금 인상 기저효과로 전년 동월 대비 상승폭은 둔화됐지만 농산물가격 상승률이 커졌다"며 "석유류 하락폭도 축소되면서 상승률이 전달보다 높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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