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경로 이탈한 한국경제(1)

최근 4년간 13분기 0%대 성장률 반복 … '제자리성장의 터널'

2015-04-08 11:21:03 게재

내수 나아질 기미 안 보여 … 올해도 두달 연속 두자릿수 수출감소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하향조정을 앞두고 우울한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간신히 3% 성장률을 사수한다고 해도 수출둔화-내수침체의 악순환에 들어갈 경우 우리 경제가 기존의 성장경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갈림길에 선 한국경제가 위태로워 보인다.

◆수출도 내수도 시원찮아 = 우리 경제가 지금까지의 성장경로에서 벗어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는 경제를 이끄는 수출과 내수 모두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고도성장기에 우리 경제를 지탱해 왔던 수출은 중국의 성장 감속, 수출주력산업의 글로벌경쟁 심화 등으로 둔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정보통신산업 부문의 성장둔화세가 두드러졌다. 반도체 및 스마트폰 제조업을 포함하는 정보통신산업은 총수출에서 큰 비중(27.4%)을 차지하는데 지난해 수출증가율이 1.7%에 그쳤다. 이는 전년 증가율(8.8%)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치다. 이에 따라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연결기준)은 전년 대비 32.0% 줄어들어 '어닝쇼크'를 면치 못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경제가 고속성장에서 중속성장으로 갈아탄 점도 수출 둔화의 큰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2009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대중국 수출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액은 339억26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감소했다. 국제수지통계상의 수출은 1, 2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율(1월 -10.3%, 2월 -15.4%)을 보였다. 이처럼 감소폭이 커진 것은 2009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의 침체도 한국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8%로 2008년 이후 가장 낮았다. 분기별로도 2013년 4분기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2014년 2분기를 제외하고 0%대 증가를 이어오고 있다.

소비심리 역시 냉랭하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로 최근 1년래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3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로 인하한 후에 조사했음에도 소비심리에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정부투입에만 의존하는 경제 = 성장의 두 축인 내수와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우리 경제는 도약은커녕 제자리걸음만 하는 양상이다. 이는 0%대 분기성장이 눈에 띄게 상시화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2011년 이후 최근 4년(16분기)간 1%대 성장률을 낸 분기는 3개 분기에 불과했다. 나머지 13분기는 0%대에 머물렀다. 특히 2011년 2분기부터 2013년 1분기까지 8분기 연속 0%대 성장을 이어가며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다른 위기 때와는 다른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마이너스 분기성장률(1997년 4분기~1998년 2분기)이 나왔을지언정 이후에는 1% 이상의 성장률을 이어갔다.

최근 4년간 간신히 1%대를 회복한 때는 그나마 정부가 재정투입 등 총력전을 펴며 나섰던 2013년 2분기(박근혜정부 초기), 2014년 1분기(재정조기집행)였다. 특히 지난해는 저유가라는 보너스까지 받은 한 해였지만 1분기를 제외하고는 0%대 분기 성장에 머물렀다.

민간소비부진이나 생산성향상 등의 고질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채 정부의 투입에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해외 투자은행 HSBC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생산성 향상보다 투입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저하고' 추세도 사라졌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국민계정(잠정)을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는 '상고하저'의 모습이었다. 1분기 1.1%, 2분기 0.5%, 3분기 0.8%, 4분기 0.3% 성장해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급속하게 둔화됐다.


◆2% 성장률 전망 많아져 = 올해 전망도 어둡다. 한국은행은 애초 올해 분기별로 1%대 성장을 지속하리라고 예상했지만 9일 성장률을 하향조정할 예정이다. 1, 2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좋지 않아 1분기 성장률도 역시 0%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1월 전체 산업생산은 2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3.1%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올해 2% 성장률을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많아졌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7일 "3% 초반은 될 것"이라면서도 "2%대로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투자은행 중에서는 일본 노무라증권과 BNP파리바증권이 2%대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2%대로 내려갔을 경우 심리적 충격은 물론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자리 숫자가 3에서 2로 바뀌면 심리적 충격이 있겠지만 아예 성장경로에서 이탈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연말정산파동, 디플레이션 화두를 성급히 꺼내는 등 내수에 찬물을 끼얹었던 부분이 패착이었다"면서 "이런 부분이 다시 정상화되지 않으면 잘못하면 2% 중반까지도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방 리스크가 커서 2%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지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면서 "만약 2%대로 간다 해도 단순히 숫자를 볼 것이 아니라 실제 경기 흐름이 꺾인 것인지, 아니면 숫자는 2%라 하더라도 회복세가 미약할 뿐인지 견조하게 가는 건지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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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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