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① 잇단 중·고생 폭행사건 사회문제화

'위기학생'만 있고 정책은 없다

2017-09-06 10:25:04 게재

시도교육청, 돈·표 되는 정책만 관심 … 청와대에 관련법 개정 청원 봇물

부산여중생 폭행사건에 이어 5일에는 강원 강릉에서 10대 6명이 또래를 무차별로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천초등생 살인사건, 대전 여중생 자살 등 최근 학생 청소년 사건이 갈수록 잔혹하고 악랄해지고 있어 대안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부가 마련한 자녀-부모 공감캠프에 참여한 서울 광주 전북 대전 가족들이 에코가방을 만들고 있다. 사진 전호성 기자


분노한 민심은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소년법 폐지와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 5일 저녁 13만건이 넘었다. '청소년법 폐지', '소년법 폐지' 등을 요구하는 청원내용이다. 현재 소년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는 형사처벌하지 않고 보호관찰, 사회봉사 명령 등 보호처분으로 대신한다.

갈수록 흉포한 학생·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대안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2012∼2016년까지 이른바 '4대 범죄'(살인·강도·성범죄·방화)로 검거된 10대 피의자가 1만5849명에 달해 미성년자 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다. 관련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도 몰라" =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른들을 잘 몰라요. 진짜 선수(?)들은 학교에서 싸우지 않아요.""선생님이 알고 있다 해도 학교 안에서만 사고치지 않으면 대부분 모른 척 눈감아줘요."

5일 대전에서 만난 준호(가명. 고 3)가 위기학생으로 분류된 아이들에 대해 말했다. 준호는 중학교 3학년부터 '일진'으로 분류되었지만, 학교 출석은 양호한 편이다. '학교가 훨씬 안전지대'라는 준호는 과거와 달리 학교를 울타리 삼아 학교 밖 '조직'과 어울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학생신분을 유지할 경우 경찰조사에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학교현장 상담교사와 여성청소년계 경찰관들은 위기학생을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한다.

대전 ㅅ중학교 최 모 상담교사는 "고교생보다 중학생 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자존감이 낮고 가치관 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라며 "위기학생 중 특히 여학생들은 '명품'이나 '돈'에 더욱 집착한다"고 설명했다.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양극화와 쉽게 돈을 버는 서비스 업종 등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돈이 필요한 아이들이 학교 밖 조직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진(가명. 서울 동작구 중학교 3학년)이는 수학여행을 가거나 생일 때 선배한테 용돈을 받는다고 말했다. 고교를 중퇴한 선배가 필요할 때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는데 심부름을 시키거나 어떤 대가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철저한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고교 졸업 후 쉽게 조직(?)으로 흡수하는 사전작업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진으로 분류된 진짜 선수들은 학교에서 사고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현재 시도교육청과 경찰은 경미한 단순폭력 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필요한 게 무엇인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상담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과거정부에서 위기학생에 대해 '대응적 접근'을 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예방적 접근' 방식의 관리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경기도경찰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위기학생 아이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들고 예비범죄자를 양산하고 있다"며 "해당 교원에 대한 처우와 전문가 양성 과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도 빠져 =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학교부적응학생(위기학생)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미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공교육 활성화 방안 및 학교교육 혁신방안'을 핵심정책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자살과 위기학생 예방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부산여중생 폭행사건과 강릉 여고생 집단폭행처럼 흉포한 사건은 예고된 사고라는 분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윗선(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도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교육계에서는 사고가 터진 지역 교육감들이 나서서 적극 해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기학생 업무를 완전히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시도교육감들은 '국가표준교육과정 지방 이양'으로 교육자치 실현 등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 교육부는 7월 14일부터 지방교육자치강화 TF팀 본격 가동했다.

하지만 위기학생 관련 정책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돈 되고 표 되는' 정책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이유다. 시도교육청 공무원들이 3D업종으로 분류된 '학교폭력' 업무를 맡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교육감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시도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위탁기관, 대안교육기관 등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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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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