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④ 본질에서 비껴가는 학폭 예방정책
'낡은' 정책만 나열 … 피해는 아이들 몫
정부, 인원 늘리고 조직 만들기에만 '급급' … "교육청·학교가 학교폭력 정책 '혁신'해야"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이나 이를 발표하는 장관들이 현장을 모르니 본질에서 비껴가는 대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지요." "정부대책이라는 게 강력한 처벌 위주로 추진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22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밝힌 '청소년 폭력 예방 범정부 종합대책'에 대해 일선 학교 상담교사들이 쓴소리를 했다. 위기학생 예방정책이 겉도는 이유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서울 강동구 중학교 상담교사인 최 모씨는 "아이들이 왜 학교부적응에서 위기학생으로, 폭력이나 자살로 이어지는지 원인파악과 맞춤형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육감과 시도교육청 담당자, 교사들의 관심과 전문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경찰청 청소년계 담당 형사는 "부모, 학교가 안일한 대응으로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며 "아이들이 스스로가 치유과정을 거쳐 건강한 시민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과정과 프로그램 운영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일선 상담교사들도 "교육부가 아무리 화려하고 구체적인 예방관리 정책을 수립한다 해도 이를 작동시킬 조직이 부실하다면 아무 효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예방보다 사고수습 중심 대응 = 중학교 1학년인 (광주광역시) 김 모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 폭행에 시달렸다. 폭행 후유증으로 틱 장애까지 생겼다. 엄마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 군은 경찰과 상당교사에게 털어놨지만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는 훈계만 받았다. 김군은 부모와 상담교사에게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고,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별히 병원 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정부와 학교에서 추진 중인 폭력 예방정책은 이미 과거형으로 새롭게 나타나는 폭력양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낡은 버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사회양극화에 따른 위기가정이 늘어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학폭 관련 예방정책은 찾아볼 수 없고, 사고가 터지면 사건처리 중심으로 조직이 가동된다. 교사는 상담사에게, 상담사는 경찰이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로 넘기고 빠진다.
최근 발생하는 학생청소년 폭력과 강력범죄에 대해 시도교육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만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대책마련을 약속했다. 김 교육감은 21일 일일교사가 되어 중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하고 산책길을 걸었다.
시도교육감들은 최근 5년여 동안 위기학생 관리에 손을 놓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모교육이 절실했지만, 부모소통의 어려움을 내세워 충분한 대화를 못했다. 학생들 자존감 교육과 가치관 교육,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세종시 ㄷ중학교 수석교사는 "인성교육에 자존감을 높이고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교육을 자연스럽게 교육과정에 녹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도 시도교육청도 의지 안보여 =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2일 서울청사에서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학교 안팎 청소년 폭력 예방 범정부 종합대책'을 논의했다. 주요 내용은 소년법 개정과 예방 수사 처벌 사후관리 등이다.
법무부 차관은 소년범 선도와 교화를 위해 전문가와 국민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보호와 치유에도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방통위 위원장은 청소년 유해정보 차단, 공익광고 제작 추진을 약속했다. 대부분 장차관들은 관련 법령 및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방식 개선, 위기학생 상담기능 강화 및 인력 확대, 학교 경찰 보호관찰소 등 관련기관 간 정보공유 활성화, 청소년 폭력 예방 인식 개선을 위한 공익광고 제작 홍보 등을 제시했다. 그나마 이도 시도교육청의 관심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학폭 업무도 완전히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상담교사와 위기청소년 상담전문가들이 '부모와 대화단절'과 '위기학생 관리부실'을 학폭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지만 범정부대책에는 관련 대책이 담겨있지 않다.
김 부총리는 청소년 집단 폭력 예방을 위해 학교와 사회, 가정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관계부처 관심과 노력을 당부했다.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사회관계장관 회의에서 학교폭력 예방에 따른 근본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나마 이를 실행시킬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의지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 연재기사]
▶ ① 잇단 중·고생 폭행사건 사회문제화│ '위기학생'만 있고 정책은 없다 2017-09-06
▶ ② 겉도는 정부 대책│ "핵심 못 짚고 현실감각 떨어져" 2017-09-13
▶ ③ 위기학생 관리부실 학교폭력 양산│ 부모-학교 대화단절 때문에 관리 어려워 2017-09-20
▶ ④ 본질에서 비껴가는 학폭 예방정책│ '낡은' 정책만 나열 … 피해는 아이들 몫 2017-09-25
▶ ⑤ 대구시교육청 위기학생 관리 시스템│ "안전망에 지역사회 참여, 잠재된 학교폭력까지 잡는다" 2017-09-29
▶ ⑥ 학부모교육이 위기학생 예방 최선책│ "학부모교육 받은 뒤 아이를 인격체로 인정했다" 2017-10-19
▶ ⑦ 위기학생 위한 국가컨트롤타워 가동해야│ "학업중단(퇴학) 학생에 '알바' 자리 내줄 어른 있나요?" 2017-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