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기획3 │자연복원

숲은 스스로 복원 … 사람이 간섭 안하는 게 낫다

2022-04-25 11:45:49 게재

고성 삼척 등 자연복원된 활엽수림은 이미 '방화수림' … 인공조림보다 숲 복원속도 빠르고 예산도 안 들어

울진산불 복구에 4170억원을 투입한다. 4170억원이 왜 투입되는지, 무엇을 위해 쓰는지 묻는 사람도 없다. 별다른 근거 없이 산불로 피해를 입었으니 돈이 투입된다고 생각한다. 마을 주변 위험목 긴급벌채에 532억원이 투입된다는 뉴스도 그냥 흘려듣는다. 그런데 울진산불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주택 복구사업에는 51억원이 책정됐다. 숲에 들어가는 비용의 1% 조금 넘는 돈만 사람들에게 투입된다는 얘기다. 설악산에 케이블카 놓자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먼저지, 산양이 먼저냐?"라고 하던 여론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 산림청이 지금까지 어떤 숲을 만들어왔는지, 국가예산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자연적으로 복원된 숲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았다. 19일 강원도 고성·속초·삼척 일대 산불 피해지 중 자연복원이 진행중인 주요 현장을 돌아보았다.

임도 출입은 인제국유림관리소와 삼척국유림관리소 협조를 받았다. 현장 안내는 주요 산불현장을 20년 이상 모니터링해온 정연숙 강원대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삼척 검봉산 2000년 동해안산불 피해지역. 능선에서 계곡지대까지 살아남은 소나무들과 참나무류 등 활엽수들이 골고루 섞여 풍성한 숲으로 자랐다. 인공조림을 한 건너편 능선은 아직도 헐벗은 상태를 다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19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송지호 서쪽의 해발 200미터 정도의 낮은 산들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산록지대다. 이 일대는 1996년과 2000년 두번의 대형산불로 잿더미로 변했던 곳이다.

임도 차단기를 열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5분 정도 들어가니 양쪽으로 전혀 다른 숲이 펼쳐진다. 오른쪽은 사람들이 심어서 잘 가꾼 소나무숲, 왼쪽은 제멋대로 자란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 활엽수림이다.

오른쪽 소나무숲은 산림청이 '대형산불 방지 소나무숲 관리 시험지'로 지정한 국유림이다. 1·2·3구역으로 나누어 숲가꾸기 강도에 따라 산불 확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이 세운 안내판도 있다. '숲가꾸기에서 나온 산물(베어낸 나무줄기와 가지)이 수관산불(나무 위 잎까지 타는 산불)로 번지는 영향을 분석하고, 활엽수림(내화수림)으로 유도하는 최적의 숲 관리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시험지라고 한다.

이 숲에는 양양국유림관리소의 관리 속에 흉고직경(가슴높이지름) 13.4cm, 수고(나무높이) 9.5미터 정도의 소나무들이 헥타르당 1750그루 자란다. 시험지 면적은 2.79헥타르다. 이 시험림이 정확한 연구 결과를 얻으려면 산불이 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비교가 될 텐데, 2000년 7월 시험림 조성 이후 산불은 한번도 나지 않았다. 시험지 입구엔 야자수매트까지 깔렸다.

2019년 속초산불 현장. 불탄 소나무들이 남아있는 구간에는 '참나무류' '개암나무' 등이 활발하게 움싹을 틔웠다. 피해목을 제거하고 나무를 심은 구간은 사막의 모래언덕 같은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으로 영랑호가 보인다.


◆척박한 토양에도 참나무숲 자라 = 이 일대는 전형적인 '화강암풍화토', 흔히 말하는 '마사토' 지질이다. 산 정상부에는 화강암 핵석으로 이루어진 둥근 바위들이 보이고 바닥은 유기물이 거의 없고 물이 쉽게 빠져나가는 거친 모래 성분이다.

보통 이런 척박한 토양에는 소나무 단순림 이외에는 자라기가 어렵다고 알려져왔다. 교과서에서도 '민둥산 → 억새밭 → 소나무숲 → 소나무/활엽수림 → 활엽수림'이 자연천이의 전형적인 과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임도 왼쪽(북쪽)으로 드넓은 참나무숲이 자리를 잡았다. 주종은 '굴참나무'들이고 그 사이사이 '신갈나무'들도 많다. 나무들 키는 제각각이지만 큰 나무들은 수고 10미터가 훌쩍 넘는다. 흉고직경 20cm가 넘는 나무들이 곳곳에 보인다.

이곳 죽왕면 삼포리에서 인정리 사이 70헥타르의 숲은 1996년과 2000년 산불피해 후 자연복구 과정을 '영구히 연구하는' 지역으로 지정됐다. 복원중인 숲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인정리 쪽으로 이동했다.

인정리 계곡에는 능선부보다 훨씬 다양한 식물 생태계가 나타났다. 소나무 단순림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철쭉'이나 '청미래덩굴' '고사리/고비류' '각시붓꽃' '우산나물' '제비꽃류' '양지꽃류' 등 관목(작은키나무)과 덩굴식물, 초본류까지 다양한 식물 생태계가 펼쳐졌다.

삼포리와 달리 산나물을 따는 사람들도 있었다. 침엽수림보다 활엽수림의 생태계가 다양한 것은 봄에 나무들이 잎을 피우기 전 풍성한 햇빛이 숲 바닥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우점종은 '굴참나무', 그 다음은 '신갈나무' 순이었다. 인정리 계곡에서 가장 큰 나무는 흉고직경 31.5cm의 굴참나무였다. 수고는 13미터 이상으로 추정됐다.

정연숙 교수는 "이 나무는 1996년 산불 이후 그루터기에서 자란 뒤 2000년 산불 때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모니터링을 한 나무들 중 가장 큰 개체"라고 말했다.

◆피해목 제거하면 모래사막으로 = 이날 오후 2019년 4월에 동시에 산불이 났던 속초와 강릉 옥계 현장을 들렀다.

2019년 4월 4일 산불 후 대부분 피해목 벌채와 인공조림을 했는데 속초교도소 옆에 피해목을 그대로 남겨둔 구간이 있다. 불탄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는 사이로 '참나무류' '개암나무' 등이 활발하게 움싹을 틔웠다. 피해목을 끌어내지 않았으니 토양층의 유기물도 그대로 남아있다.

반면 피해목을 다 제거하고 활엽수를 심은 구간은 사막의 모래언덕 같은 모습이다. 피해목 벌채로 민둥산이 된 모습은 강릉 옥계 피해지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해가 지기 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검봉산 임도를 올랐다. 2000년 4월 발생한 동해안산불 이후 자연복원에 맡긴 곳이다. 환경부와 강원대학교, 강릉대학교에서 '산불지역 생태계 영구모니터링'을 한다. 당시 피해지 48%가 자연복원 방식으로 복원됐다.

검봉산 능선부는 소나무숲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곳 소나무들은 흉고직경 50cm가 넘고 키 20미터 정도로 큰 나무들이라 산불에도 상당수가 살아남았다. 중간중간 쓰러진 피해목들이 보이고 소나무들 사이로 '철쭉'과 '쇠물푸레나무'들이 꽃을 피웠다.

능선에서 계곡까지 군데군데 살아남은 소나무들과 움싹으로 돋아난 활엽수들이 골고루 섞여 풍성한 숲으로 자랐다. 반면 소나무 인공조림을 한 건너편 능선은 아직도 헐벗은 상태를 다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수십년 연구 결과 산림청도 아는데" =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거대한 나무 두그루를 만났다. 하나는 '검봉송'이라 이름이 붙은 1200년 수령의 소나무, 또 하나는 흉고직경 1.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굴참나무'였다. 침엽수와 활엽수, 두 노거수가 사이좋게 마주보며 검봉산 계곡을 지키고 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산은 1970년대 이전의 민둥산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복원에 맡겨도 충분히 스스로 재생할 수 있다"며 "산림청이나 국립산림과학원도 지금까지 해온 20년 이상의 연구 결과에 대해 잘 알고있는데 왜 자꾸 산불 피해지에 인공조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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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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