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 갑옷을 입은 '굴참나무'

2022-04-25 11:45:49 게재

산불에도 버티는 '철갑기병'

산불 피해지에는 유독 굴참나무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신갈나무가 주종인 숲이 제일 많은데 산불이 지나간 숲에는 신갈나무보다 굴참나무가 더 많이 눈에 띈다. 굴참나무는 나무껍질이 두꺼운 코르크층으로 덮여있어 산불에 강한 대표적인 수종이다.

정연숙 교수가 19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 자연복원지 숲에서 굴참나무 흉고직경을 측정하고 있다. 1996년 산불 이후 움싹으로 자란 이 굴참나무는 2000년 산불 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흉고직경이 31.5cm나 됐다.


미국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1887~1948)는 '모래군의 열두달'에서 "버오크(Bur Oak. Quercus macrocarpa)의 코르크는 갑옷(armor)이다. 이들은 프레리 초원지대를 침입하기 위해 숲이 보낸 선봉대(Shock Troops)"라고 썼다.

'모래군의 열두달' 한국어판(송명규. 따님)은 버오크(Bur Oak)를 '굴참나무'(Quercus variabilis)라고 번역했다.

물론 굴참나무와 버오크는 서로 다른 수종이다. 그렇지만 둘 다 산불에 강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초원과 숲의 전쟁'에서 숲을 지키는 전위대 역할을 한다.

"이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은 불이었다. 매년 사월, 새 풀이 돋아 타지 않는 녹색 잎으로 뒤덮이기에 앞서 불이 평원을 휩쓸었다. 타죽지 않을 정도로 껍질이 두껍게 자란 나이 많은 참나무들만 살아남았다."

"결국 이 전투의 최종 결과는 무승부였다. 이편과 저편을 번갈아서 드는 동맹군들 때문이었다. 토끼와 쥐는 여름엔 풀을 갉았고, 겨울엔 어린 참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 다람쥐는 가을엔 도토리를 심고, 나머지 계절엔 이걸 먹어치웠다."

숲과 초원의 자연스러운 전쟁은 이제 미국의 대평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이 대평원을 경작지로 만들었고 인위적으로 불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산불을 끄기 시작하면서 경작지가 아닌 초원지대는 대부분 숲으로 변했다. 당연히 생물다양성도 떨어졌다.

옐로스톤 등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산불이 났을 때 끄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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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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