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9주기 "참사 반복 않는게 추모"
시민 "정부 대응 각자도생 하라는 식" … 이태원 유족들 "국가 부재 공통점"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9주기 기억식'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진행된 '시민 기억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추모"라며 입을 모았다.
안산시 소재 서울예대 학생이라고 밝힌 김 모씨는 단원고 희생자와 비슷한 나이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기억식에 참석했다고 했다. 김씨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다 같이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고 생각해 친구 3명과 같이 왔다"며 "세월호 단체를 폄훼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사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정권이 바뀌었는데 정부가 국민을 생각한다면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개선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9주기까지 추도식에 참석했다는 40대 한 시민은 나이가 들면서 기성세대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된다고 했다. 시민은 "(정부가)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해놓고선 실제로는 변한 게 없어 '생명이 귀중하다'는 말은 박제화돼 가는 것 같다"면서 "잘하자는 식의 말만하고 끝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시민합창단으로 참석한 50대 시민은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태원참사의 경우 (안전) 제도 개선이 되지 않아 발생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소방이나 경찰이 나와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당시 정복을 입은 경찰이 질서 유지를 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억식 참석자 중에는 2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동포도 있었다. 2014년 당시 미국에서 소식을 접했다는 홍 모 목사는 동포들과 큰 충격을 받고 이후 세월호 추모 행사를 계속해 왔다고 했다.
홍 목사는 "사회적 재난이 났을 때 중앙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되고 지방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협조해 대응할 때 국민들이 안심하고 자신들 맡은 일을 해나갈 수 있다"며 "9주년이 됐는데도 유족들은 국가나 관련 기관에서 책임 있는 발언이나 대책이 없고,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 정부 무책임 꼬집어 = 세월호 참사 9주기인 것을 알고 시민 기억식에 참석했다는 구 모씨는 "텔레비전을 통해 본 기울어진 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이 컸다면 한창 젊은 나이였을텐데 헌화를 하면서 부모들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때 좀 더 신속하게 구조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구씨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도심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대처를 보면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하다"며 "내 자식이고, 손주고 당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느냐"고 정부를 비판했다.
세월호 당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다는 박 모씨는 매년 세월호 참사 추모행사에 참석한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기억공간을 찾은 박씨는 "딸이 세월호 참사 1주일 뒤에 배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가 취소됐고, 지난해 핼러윈 때에는 영등포로 놀러가 화를 면할 수 있었다"며 "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각자도생하라는 것 같았다"며 "비단 안전문제 뿐 아니라 경제 민생도 그냥 알아서 살라는 식"이라고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꼬집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최 모씨는 인터넷을 검색해 추모행사가 열리는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어려서 잘 모르다가 뒤늦게 세월호 참사가 어떤 사건인지 알게 됐다"며 "9년이 지나 많은 시민들이 잊은 것 같아 나라도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오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났듯 우리나라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며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계속 기억하고, 기억해서 다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유족도 함께 추모 = 김광준 4·16재단 이사장은 9주기 기억식에서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소리높여 외쳤지만 9년이 지난 오늘날 어느 하나 이뤄진 게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부터라도 힘을 모아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세월호 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도 기억식에 참석해 함께 슬픔을 나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는 영상 발언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회상했다. 최씨는 "세월호 참사 때는 슬퍼하기만 했다"면서 "그때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고 분노를 했더라면 내 아이를 지킬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세월호 엄마에게 (당시) 멈춰버린 분노에 너무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이런 지옥에 다시 서지 않게 진상규명을 위해 목숨을 다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선씨는 "이제는 다 길러서 혼자 설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자기 꿈도 펼치지 못하고 길을 가다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됐다"며 "이 현실을 다음 세대는 절대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씨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부재로 인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부재로 인한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고 이지영씨 아버지 이정민씨(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같은 슬픔을 나누면서 함께 추억하고 연대할 것을 다짐한다"면서 "(이태원 참사의 경우) 특별법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는데 이를 제대로 통과시켜서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고, 현재 밝혀지지 않는 모든 의혹을 밝힐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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