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이상민 탄핵소추 167일만에 기각

정부 '재난 대응 역량' 총체적 결과

2023-07-26 11:11:27 게재

헌재 "특정인 책임 못물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어느 한 정부 관료에게 지우기 어려운 만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파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올해 2월 8일 국회가 이 장관의 탄핵 소추를 의결한 날로부터 167일 만이다.

헌재는 25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 장관 탄핵 심판 사건의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헌정사상 첫 탄핵 심판의 결론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장관)은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인명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것이 아니다"라며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이태원 참사를 전후해 이 장관의 사전 예방조치 의무, 사후 재난대응, 국회에서의 사후 발언 등 모든 쟁점과 관련해 탄핵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우선 사전 예방조치 의무와 관련해서는 "피청구인은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 축제 중 대규모·고위험 축제에 대해 미비점 개선·보완 요청 등을 했다"며 "다중밀집사고 자체에 대한 예방·대비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후 재난대응 조치와 관련해서도 이 장관이 참사 발생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적시에 설치하지 않았다는 탄핵 청구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중대본 운영보다는 실질적 초동대응이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현저히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청구인은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관계 기관의 보고를 받고 지시 및 협력 요청을 계속했다"며 "공적 신뢰를 현저히 해할 정도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했다거나 유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률에 따른 재난관리주관기관 지정,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설치 등이 지연됐더라도 전례 없는 참사가 발생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점이 있었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재난안전법상 의무 등을 고의로 어기거나 회피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참사 원인이나 '골든타임'과 관련해 국회나 언론 질의에 부적절하게 답했다는 탄핵청구 사유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부적절하다"면서도 장관을 탄핵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재난대응 과정에서 최적의 판단과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재난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은 탄핵심판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장관의 일부 재난 대응조치와 사후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상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별개 의견을 남겼다.

정정미 재판관도 이 장관의 사후 발언이 "책임 회피에 연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별개 의견을 남긴 재판관들 역시 이 같은 잘못이 장관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는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한편 헌재 결정에 따라 이 장관은 이날 즉각 직무에 복귀했다. 여당은 무리한 탄핵소추를 추진한 야당이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한 반면, 유족과 야당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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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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