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소득보장, 우선 공적지원 강화하자│① 정부안은 '최소보장'

"노인 절반이 빈곤층인데, 알아서 살으라고?"

2017-03-21 10:59:09 게재

자산을 소득 전환해도 노인가구 60%가 생활 어려워 … 정부, 재정 탓하며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에 의존

우리나라 노인 절반은 가난하다. 집 유지비, 아플 때 나가는 의료비가 부담스럽다. 밀려오는 경조사 참석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유로움은 찾을 수 없고 사람과의 만남도 위축된다. 노후가 우울하다. 이런 노인의 삶은 행복한 복지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에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복지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국가의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공적지원을 우선 강화하라"는 요구를 쏟아 내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노인빈곤율이 높은 상황이라 현금소득 지원이 절박하다"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혜택을 보지 못하는 인구층이 많으므로 기초연금을 우선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창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결혼과 주거비 확보, 자녀교육비 부모의료비 지출로 청장년시기 현금을 모으지 못한 빈곤층에게 정부의 사적연금 강화안은 빈곤한 국민 다수에게 각자 노후준비하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높은 노인빈곤율, 현금 소득 지원 절박 = 이런 주장들은 정부가 공적연금을 강화하기 보다는 사적연금을 활성화해 노후소득을 확충하려는 정책을 추진한 것과 관련있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 정책을 추진해 왔다. 국민연금 수급대상을 확대하면서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해 공적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갖춰왔다. 65세 이상 노인의 공적연금 수급율은 2005년 16.1%에서 2010년 30.0%, 2014년 38.7%로 늘었다. 정부는 또 공적연금 이외 퇴직연금, 개인연금, 농지연금 등 다양한 수단을 장려해 다층적 소득보장체계 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은 2014년 기준 49.6%로 OECD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평균은 12.6%이고 일본은 19.4%, 독일 스웨덴 9.4%, 프랑스 3.8% 등이다. 정부는 "연금제도가 성숙되지 않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빈곤의 덫에 빠진 고령층 일을 하거나 재산을 통해 얻은 소득을 기준으로 본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최근 5년 새 최고치를 찍었다. 1월 17일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최근 결과인 2015년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61.7%로 전년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연합뉴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연금제도가 정착되더라도 지금 상태로는 노후빈곤은 쉽게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초저출산초고령화사회의 위험과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통해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이 노후생활에 필요한 소득의 45% 이하로 전망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기초연금 도입 이후에도 생애효용(생활필요) 기준으로는 은퇴 후 필요한 소득의 약 65%, 최저생계기준으로는 은퇴 후 필요한 소득의 약 30%를 공적연금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산 50%를 소득으로 전환한 금액을 포함한 전체 노후소득이 노후생활에 필요한 금액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노인가구의 60% 수준이 될 것으로도 전망됐다.

◆서구 다층소득보장은 공적연금 안정 위에서 구축 = 그럼에도 정부는 공적연금 의존도가 높다며 개인 노력으로 노후소득을 확보하는 사적연금 강화안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다층노후소득보장 협의 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위원회는 기존 공적연금 강화 차원에 머물던 정책을 사적연금 활성화로 확대했다. 이는 공적연금 강화가 재정확보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부담스럽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을 2015년 50.6%에서 2020년 60.6%로 올리기 △개인형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무금액 상향 등) △고령가구의 부동산 자산을 현금화 할 수 있는 주택연금제도 활성화 △고령농업인의 노후생활 안정장치로 농지연금 지속적 제도 개선 △주택농지연금 이용 촉진을 위한 인식개선 홍보 마케팅 전략 수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치솟는 집값 등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만큼 여력을 가진 가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2013년 2월 기준 주택 시가총액은 4244조원에서 올해 1월 5025조로 박근혜정부 4년에만 1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파트 시가총액은 2106조원에서 2802조원을 33%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월 가구소득이 419만원에서 445만원으로 6% 증가하는데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정부 정책결과인데 실제 가계부채는 지난 4년간 380조원 넘게 증가해 국내총생산(GDP)의 90% 수준에 달하는 1344조원으로 불어났다. 대출을 받은 주택구입자들은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집값 상승은 전·월세 상승으로 이어져 무주택자의 주거비부담도 늘려놓았다.

우리나라의 높은 사교육비도 노후준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전체 사교육비는 학생수가 줄면서 2009년 21조6000억원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5년 17조8000억원까지 줄었으나 지난해 18조1000억원으로 다시 증가세로 전환했다. 1인당 사교육비는 2012년 월평균 23만6000원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25만6000억원으로 통계를 작성한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집값과 교육비 등을 충당하느라 여유가 없는 가구에 사적연금을 활용해 노후에 대비하라는 정부의 정책이 먹혀들 리 없다. 정부는 2014년 8월 퇴직금을 일시에 받는 대신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 수급요건을 갖춘 55세 이상 근로자 중 일시금 수령을 택한 비중은 2014년 97.1%에서 지난해 98.4%로 되레 늘었다. 주택비와 교육비 지출 등으로 저축이 충분치 않다보니 자녀결혼비 등 목돈이 필요해지면 퇴직금 일시 수령을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구의 다층노후소득보장 정책은 공적연금의 안정적 지원 속에서 사적연금 확대를 시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부실한 공적연금 위에 사적연금 확대를 추진해 노후소득보장체계 전체가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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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구본홍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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