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2024
전산학 분야 중에서 인공지능(AI)을 연구해온 대학교수와 기업연구소 연구자 5명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일을 놓고 기초과학계 충격이 크다. AI의 대부격인 2명을 비롯해 알파고를 만든 소장 연구자 3명이 그들이다. 전산학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전산학계 노장은 물론 소장까지도 노벨상을 함께 거머쥐었다고 하는 사실은 전산학의 위상을 생각하게 한다. 언론의 주요 논평은 이렇다. 기초과학의 혁신은 자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으며 과학계의 연구방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전산학에 의해서 가능해지기 시작했다는 의견, 과학 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앞으로는 AI가 아니고는 풀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전산학 중심의 시각, 또는 의학계의 히포크라테스가 컴퓨터계의 영국 튜링과 만난 것이라고 보는 기초과학 중심의 견해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해내는 데 성공했고 단백질 구조를 신속하고 간편하게 파악하기 위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알파는 구글을 지칭)라
10.29
전쟁 때문에 이스라엘도 러시아도 방문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낀다. 한국관광객들은 동남아시아나 유럽을 많이 찾게 되었다. 유럽 도시들을 방문하다 보면 곳곳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교회와 성당들을 지나칠 수 없다. 그런데 막상 교회나 성당에 들어가 면 현재보다는 역사를 느끼게 된다.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의 입장이 사회적 이슈를 보는 여러 시각의 하나로 밀려났다. 예를 들어 동성애, 낙태 등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이슈들인데 항상 논쟁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 입장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보고자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근대의 계몽사상가들이 합리성에 기초한 인권과 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했고 그 토대 위에서 사회체제에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역설적인 것은 예를들어 ‘인권은 천부적이다’라는 표현이 ‘권력은 하늘에서 온다’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교
10.28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가 큰 파문을 낳고 있다. 북한이 파병 댓가로 핵과 ICBM 등 군사기술을 이전받을 것이라는 둥,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둥 여러 가지 분석과 억측이 나오고 있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24일 폴란드 대통령 환영행사가 열리던 용산 대통령실에 대통령 내외를 원색적으로 조롱하는 북한 전단지가 살포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해 반체제 전단을 뿌렸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장소와 시간을 특정해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 신경전이 여기까지 온 것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대결노선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전략도 정책도 없이 북한을 넘어뜨리겠다는 고식지계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사태를 키워가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안일하고 무기력하다. 북이 도발해오면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하겠다며 ‘즉강끝’을 외치던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와 무력대응 자
10.24
꼭 8년 전 오늘이다. 2016년 10월 24일 앵커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저녁뉴스 시간에서였다. JTBC는 태블릿 컴퓨터 자료를 근거로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받았다고 단독보도한다. 그날 이후 민심은 폭발한다. 수많은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대규모 시위는 국회가 ‘박근혜 탄핵’을 가결시킨 12월을 넘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다음해 3월까지 계속됐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제는 그로부터 2년 전인 2014년부터 거론됐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던 박관천이 최순실이 청와대 비선실세라고 폭로하면서 민심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 7월 TV조선이 최순실의 재단법인인 미르재단과 그 모금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보도를 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당시 국민 분노는 대단했다. 민심은 폭발했고 광장은 절규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촛불시민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엄청난 군중이 모였는데도 하나의 폭력도
10.23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까지 감행했다. 국가정보원 보고다. “북한군 특수부대원 1500여명이 우크라이나 파병을 전제로 러시아 군부대에서 적응훈련을 받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한다. 러시아 해군 수송함이 북한 군인들을 실어 나르는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북한군 선발대는 특수부대 ‘폭풍군단(11군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군기지에서 훈련이 끝나면 곧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왜 파병까지 가게 되었을까? 러시아와 북한은 1961년 체결한 ‘조·소동맹조약’으로 군사동맹을 유지해왔다. 소련 붕괴(1991년 12월) 이후 거세게 불어닥친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개방) 열풍이 조·소동맹을 폐기시켰다.(1996년 9월) 반면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국가 간 교류가 정상화됐다. 2년 뒤 1992년 ‘한·러 기본관계조약’을 체결했다. 다음해인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러 관계는 급속도로 개
10.22
인공지능(AI)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능력으로 숨어 있는 패턴, 연계성 및 비효율 등을 찾아내어 기업 경영에서 변화 추적, 결과 예측 및 시스템 행동 향상 등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능력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 기후위기 완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AI의 천문학적인 전력 사용을 고려하면 종합적으로 기후변화에 바람직한 영향을 주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AI 산업과 기술의 확산을 고려하면 AI로 인한 기후위기 심화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까지도 원자력에너지는 적은 온실가스 배출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그린에너지가 아니며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퇴출대상으로 인식됐다. 그리고 방사능 누출 사고는 그런 인식을 강화시켰다. 1979년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섬 원전에서 냉각시스템 오작동으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해 원자로가 폐쇄됐다. 이 사고로 미국민들 사이에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공포와 우려가 확산됐다. 하지만 사고가 나지 않은 한개의 원자로는 40년 동안 가동되다가
10.21
10월 초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 한편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캐나다 출신 여성 작가인 미레일 시코프가 책 읽기를 죽도록 싫어하는 12세 딸에게 책 한권을 읽을 때 100달러의 ‘뇌물’을 주어 딸의 독서습관을 고쳐 놓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퍼득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이 책 안 읽는 아들 딸들에게 이 방법을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엄마(시코프)가 보기에 딸이 자기 나이 때에 비해 훨씬 똑똑한데 큰 문제가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독서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도 책읽기를 싫어해서 재미있는 소설 같은 책도 몇쪽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고작해야 만화 소설을 보거나 ‘해리포터’를 오디오북으로 듣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엄마는 청소년기에 소설 같은 책을 읽어야 간접체험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딸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려 했지만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은 ‘책 안 읽는게
10.17
이른바 ‘먹방’은 시청률 보증수표이다. 최불암씨가 입맛을 다시던 ‘한국인의 밥상’은 어느덧 13년째 롱런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3인 진행체제로 개편됐지만 만화 ‘식객’의 작자 허영만씨는 6년째 ‘백반기행’ 중이고. 나영석PD의 스타성을 확인해 준 ‘삼시세끼’ 첫 방송이 2014년 10월 17일이다. 딱 10년 됐다. 그동안 산촌 어촌을 거치더니 지난달 미스터트롯 임영웅을 게스트로 ‘삼시세끼 라이트’가 새 시즌을 시작했다. 먹방은 지상파 케이블 홈쇼핑 유튜브 등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먹고 보는 아이들’은 대만 태국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홈쇼핑은 구독자 900만명 유튜버와 콜라보로 먹방 생방송을 진행한다. 뭐니뭐니 해도 먹방의 최대 수혜자는 ‘골목식당’의 백종원씨, ‘냉장고를 부탁해’의 최현석 요리사가 아닐까. 그 백종원씨와 최현석씨가 출연한 ‘흑백요리사’가 화제다. 내로라하는 스타 셰프 20명과 도전자 ‘흑수저’ 80명이 요리 솜씨를 겨루는 구성이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10.16
히틀러가 지구촌 곳곳을 서성거린다. 1933년 선거에서 선출된 자신의 권력을 믿고 국회에 “비상사태이니 국회 입법권을 정부에 넘기라”고 요구한 뒤 각종 개혁정책(개악 정책 포함)을 밀어붙인 것과 똑같은 정치적 행보도 보인다. 아르헨티나에서 지난해 8월 대통령직에 깜짝 당선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얘기다. 오랜 경제난에 시달렸던 아르헨티나 국민은 개혁적인 새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그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낮춘다는 명분의 파격행보에서 히틀러 같다는 평을 듣는다. 그를 뽑은 이유는 희석되거나 사라졌고 국민의 실망과 반감은 하늘을 찌른다. 밀레이는 지난해 말 총 664조항으로 된 ‘옴니버스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밀고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2년간 입법부 권한을 행정부에 이양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히틀러도 그랬다”며 반기를 들고 나선 인물이 198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인권운동가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92)이다. 그는 “히틀러도 독일 국회에 특별권한을
10.15
목요일 아침 공부모임 ‘루첼라이 정원’은 르네상스와 세계 지성사를 배우는 인문학의 열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루첼라이 정원’은 이탈리아 문예부흥을 이끈 피렌체의 루첼라이 가문이 16세기 초 운영했던 학당입니다. 이 이름을 딴 ‘루첼라이 정원’은 참석자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하는 공부모임입니다. 어떤 모임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500여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함께하면서 공부를 합니다. 이렇듯 서울의 아침 풍경은 공부 모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듣지 못하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이들을 아침 모임에 나오게 합니다. 아직은 공부와 더불어 네트워크도 강화하는 모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부 그 자체의 내용이 풍성해야만 참석하겠다는 분위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침 모임에 나가서 공부하면서 다른 공부 모임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오면 부족하지만 불가피하게 나가 강의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세상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곤
10.14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지난 목요일(10일) 저녁 8시가 갓 지날 무렵 영시공부모임 단체대화방에 ‘한 강 노벨문학상 수상!’ 아홉 글자가 떴다. 누군가 희망사항을 장난삼아 올렸겠지 여겼다. 곧이어 ‘진짜? 믿기지 않은 쾌거입니다.’ ‘브라보!’ ‘우와!!!’ ‘오!’ 같은 문자가 속속 올라왔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보고 주요 신문 인터넷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긴급 속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가짜뉴스구나! 하고 말았다. 조금 뒤 국제뉴스를 가장 빨리 전하는 연합뉴스 사이트에서 ‘[1보] 노벨문학상에 한국 소설가 한강’이라는 제목만 있는 속보를 발견했다. ‘진짜구나!’ 그제야 문학적 수사가 필요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사실 오랫동안 스스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희망고문해 온 한국인들은 ‘아직은’이라는 체념상태에 빠져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눈물이 고였다.” 시민들은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탄생에 환호작약했다. “살다 보니
10.10
더위로 미루었던 성묘와 벌초를 하러 고향에 다녀왔다. 해가 갈수록 기후변화를 체감한다. 매년 느끼지만 동네 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전전해에는 동물병원이 문을 닫았고, 전해에는 옷 짓고 수선하는 집이 사라졌다. 올해에는 마을에 하나뿐이던 슈퍼마켓이 문을 닫을 모양이다. 인구가 더 감소할 조만간 보건소나 우체국같은 사회 기반시설(인프라)마저 유지하기가 버거워질 일만 남았다. 이미 3300여개 우체국을 거느린 우정사업본부는 ‘세금먹는 하마’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을 갖고 있다. 작년에 일반 우편사업에서 170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고령화와 함께 분산된 거주구조는 지방필수의료의 붕괴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의사가 아무리 많아져도 지방에 민간사립병원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현대의료는 고가의 장비에 의존하는데 비용을 회수할 수 없기에 최소의 의료장비조차 투자할 수 없다. 불현듯 “소는 누가 키우나” 라는 옛적 유행어가 떠오른다. 사과 시금치 상추 파
10.08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노래 속 각설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유독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 문과-이과 담론이다. 주로 문과 출신이 쓴 글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어야 스티브 잡스 같은 훌륭한 공학자가 될 수 있다’ ‘문과 출신에겐 이과생에게 없는 긴 호흡과 안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이 전파된다. 쉽사리 동의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는 이과 출신이라 문해력(文解力)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개념이 모호할 땐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게 좋다. 물리의 신 뉴턴도 ‘좋은 사례가 이론보다 더 중요하다(Examples are more important than theory)’고 했다. 이과 수업이 이론 강의와 실험 실습, 연습문제 풀이를 병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장과 이론이 현실과 타당하게 들어맞는지 검증하는 게 실험실습이고, 이론을 구체적으로 사례를 통해 풀어보고 이해하는 게 연습문제 풀기다. 긴 호흡이 필요한 문제가 무얼
10.07
서울 근교에 문을 연 지 얼마 안된 음식점에 들렀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보리 비빔밥집이다. 주방 앞에 크게 내건 사장 겸 주방장의 이력과 조리경연대회 수상 경력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소재 호텔 조리부에서 일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베트남에 파병돼 조리병으로 근무하며 사령관 표창을 받았다. 1978년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다시 호텔 부장급 요리사로 근무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기능공 식사를 책임지는 영양사 겸 총 주방장을 지냈다. 이어 아프리카 나이베리아에서 레스토랑을 열었다. 귀국해 강원도 춘천, 경기도 남양주에서 한정식과 소머리 곰탕집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말 접었다. 그러다 하는 일 없이 지내기 무료해서 8개월 만에 다시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비빔밥집 사장님처럼 적잖은 경험과 조리대회 우승 경력자라도 요즘 한국에서 음식점 경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식당과 카페 등 업소가 워낙 많고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이다. 손님들이 대기표를 받
10.02
자고 나면 깜짝 놀랄 뉴스가 터져 나오는 시국이다 보니 웬만한 뉴스는 얼핏 보고 큰 감정 동요 없이 지나칠 때가 있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보도된 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에 관한 뉴스도 그 중 하나다. 이 매체는 매년 추석 즈음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함께 ‘대한민국 신뢰도’라는 제목의 여론조사를 해 특집기사로 공표한다. 이번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신뢰도 10점 만점에 2.82점으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보도됐다. 취임 첫해인 2022년 3.62점, 이듬해 3.63점에서 올해 최저점을 경신한 것인데, 파면되기 전 박근혜 대통령의 말년 신뢰도가 이보다 높은 3.91점이었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한들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취임 후 늘 20~30%에서 맴돌았음을 고려하면 이 또한 깜짝 놀랄 뉴스는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0~10점으로 평가해달라는 항목에 응답자의 44.6%가 0점을 주었다는 대목에서는 적이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
09.30
한국의 근현대는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고 참혹한 전쟁을 겪어낸, 그리고 억압적 독재를 무너뜨린 격정의 역사였다. 고통과 좌절, 희생이 따랐으나 한국인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위대한 역사를 일궜다. 그러나 여기까지인가? 집권세력은 무엇에 홀린듯 역사를 고치고 헌법을 뒤틀며 국가를 자기들 뜻대로 ‘개변’하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정권 이래 잠행하던 뉴라이트가 다시 전면에 나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순순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기세가 완강하다. 겉보기에는 정치지형도 이들의 사상공작 정치운동에 유리하다. 집권여당이 이명박정권의 친미일 반북, 친기업 반서민, 언론장악 기도 등을 답습하고 있어서다. 권력이 국민들에게 겸손할 생각이 없는데다 의회주의 정당정치라는 정치규칙을 막무가내 무시하고 있는 것도 유리한 환경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번에도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권력의 오만과 부패, 의료 대란 등 거듭되는 실정으로 민심이 이반하고, 친일과 이승만 독재에 비판적인
09.26
우리 사회에 다시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가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신체의 자유와 언론ㆍ출판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심각하다. 법조계와 언론계에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법조인이 ‘법기술자’, 기자가 ‘기레기’로 조롱당하는 현실이 그것을 반영한다. ‘자유’에 대한 개념도 보수와 진보진영이 각자 제멋대로 쓴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진지한 담론은 들을 수 없다. 인권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생각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구속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영어 표현을 보면 좀더 정밀하게 구분한다. 프리덤(Freedom)과 리버티(Liberty)다. 프리덤은 보통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능력으로 쓰인다. 어떤 힘 앞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행위를 감행할 수 있는 힘(The power to do)을 의미한다. 반면 리버티(Liberty)는 인간에 대
09.25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시민이었던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전쟁의 기원이 사람들이 소박한 생활을 넘어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 위해 이웃의 땅을 원하는 탐욕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만이 전쟁의 원인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권력자의 영역확대를 향한 욕망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 역사 속의 숱한 정복자들이 좋은 예다. 원인이 무엇이든 전쟁 없는 세상은 없는 게 인류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목하 세계에는 두 개의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및 레바논 간의 전쟁이 그것이다. 둘 다 크게보면 국제정치 상 패권국가들 간의 세력다툼의 일환이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미국과 그 동맹국인 서유럽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서방세력의 지원이 없다면 두 나라는 벌써 지도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서방세력을 적대세력으로부터 방어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09.24
사진은 초상권이 달린 데이터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입학원서나 입사원서에서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입학이나 입사 후에 학생증이나 사원증을 만들 때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사진을 찍어 가져오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촬영한다. 초상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한 관리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듬뿍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온갖 신청서류에 사진을 요구하며 대개 사진관에 가서 찍도록 만든다. 초상권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관리가 안된 사진이 딥페이크를 만드는 데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게 국내 현실이다. 사진을 재산권이 달린 데이터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자동차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지는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데이터 시대라고 한다. 어떤 데이터든 가장 처음 만들어질 때 데이터 출처를 표시하도록 강제하기만 하면 정품 데이터인지 아니면 허위 데이터인지 구분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인공지능(AI)이 대두되면서 AI가
09.23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까닭은 언제나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는 난제 때문이다. 개혁을 저돌적인 의지만으로 이뤄내기란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연금·의료·교육·노동의 4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6일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임기 절반 가까이 되도록 선행 개혁과제는 물론 올해 초 추가한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결실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개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개혁의 기본을 모르는 탓이 크다. 모든 개혁에는 세밀한 사전 정지작업과 각고정려한 설득의 리더십이 필수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스타일로 말미암아 개혁의 동력을 꺼트리는 일이 더 잦았다. 개혁의 선봉장으로 내세운 인물들은 설득자이기는커녕 애물단지처럼 됐다.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갈파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사회심리학자가 이를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