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9
2024
1996년 12월 초다. 당시 명지대 총장인 고 건씨가 연락했다. 기사 중 약력에 전북 출신으로 잘못 기입돼 있다는 거다. 부친이 서울 근무 중 마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본적과 부친의 생활 근거지는 전북이 맞지만 출생지는 서울이라는 취지다. 출생과 출신 용어를 두고 가벼운 입씨름이 있었다. 그날 저녁 서울 혜화동 음식집에서 만났다. 진보매체의 정치부 기자와 동석이었다. 술잔을 돌리며 담소를 나누는데 각종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퇴폐적으로 여겨졌던 비디오방을 궁금해했다. 자연스레 인근 비디오방을 찾아가 고씨를 알아 본 주인의 도움으로 구석구석 살펴봤다. 이어 호프집으로 옮겨 대학생들과 어울렸다. 청년들 관심사에 관심을 보였고 건배도 했다. 포장마차에 들어가서는 어묵 꼬치에 소주를 마시던 직장인들의 애환도 들었다. 이쯤이면 명약관화했다. “총리 제의를 받으셨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 증후군, 즉 레임덕에 빠져 있었다. 차남 현철씨가 구설수에 올랐고 남북관계도
09.12
올 여름은 정말로 심하게 더웠다. 8월의 폭염일수는 16일로 1973년 통계 집계 이후 두번째로 많았고 열대야 일수는 11.3일로 두자릿수를 처음으로 기록했다. 특히 놀랍게도 8월 5일(93.8GW), 12일(94.5GW), 13일(94.6GW), 19일(95.6GW), 20일(97.1GW) 이렇게 무려 다섯차례나 최대 전력수요 기록이 경신되었다. 그래도 발전소의 적기 건설과 안정적 운영을 위해 많은 이들이 고생했기에 정전의 위험없이 올 여름을 잘 넘기고 있는 중이다. 전력과 관련해서는 섬과 다를 바 없고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수급이 안정적이라는 점은 수출주도형 제조업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우리의 자랑거리다. 밤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맺히는 완연한 가을을 나타내는 백로(白露)가 지난 7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서울에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까지 발령되었다. 그날 정부, 한전 및 전력거
09.11
지난 2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정책에 반발해 전공의 등이 병원을 떠난 이후 6개월 넘는 병원 응급실 공백사태로 추석연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추석은 명백한 응급의료 위기”라고 밝혔다.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른 병원들의 응급실 폐쇄, 주말 야간 휴진도 잇따르고 있다. 10개월 영아와 공사장 부상자가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거나 의식불명에 빠진 최근 사례가 가뜩이나 환자가 늘어나는 명절연휴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행동으로 병원을 떠났다가 개별 복귀한 전공의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배신자’ ‘부역’ 등의 표현을 달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해온 의료계가 추석연휴 응급실 근무자의 명단을 추가 발표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추석기념 수련병원 응급실 특별편’(명단)을 7일 신설한 것은 전공의가 복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낙인을 찍자는 의도이다. 군의관 추정 5명을 포함한 의사 100여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응급실부역
09.10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진 걸 보니 가을인가 봅니다. 습한 폭염과 한달 이상 계속된 열대야로 축 늘어지고 혼미했던 몸과 마음이 이제 살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가 느닷없이 툭 튀어나온 일은 아니지만 올해처럼 그 영향을 피부로 느꼈던 해도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매달 평균기온의 기록이 깨지는가 하면, 최저기온이 25℃ 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열대야가 사상최대 일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것을 보며 과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생활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순진하게 재롱을 떠는 아이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열기가 인간 삶의 구석구석을 전방위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파괴로 농작물 재배체계가 헝클어져 곡물 야채 과일값이 치솟고 커피값이 오릅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어패류 생태계도 바뀌니 어민들이 비상입니다. 경제기사에 ‘기후인플레이션’이란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공기흐름에 민감한 비행기도 안전운항에 위협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기
09.09
블록버스터는 영화용어다. 상업적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만드는 영화다. 대형세트와 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다양한 특수효과가 도입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이를 경제용어로 끌어들였다. 윤 대통령은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는 우리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며 한국경제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보고 싶은 좋은 경제지표만 보고받는 느낌이다. 국정브리핑 사흘 뒤 집계된 8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4% 증가한 579억달러. 수출은 11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이다. 무역수지도 1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런 수출의 온기가 좀처럼 내수로 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출의 일등공신은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다. 수출호조를 이끄는 품목 대부분이 고용유발 효과가 낮고 자본집약적인 정보기술(IT
09.05
어린 시절 경험 중 아직도 납득이 안되는 것이 단체기합이다. 그 당시 신체적 고통보다 괴로웠던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처벌받는다’는 억울함이었다. 지난해 R&D 예산 삭감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기술 연구자들에 대한 연구비 삭감 통보를 받았을 때 떠오른 단어가 바로 단체기합이다. 잘못한 친구가 누구인지, 카르텔이 무엇인지 이름도 존재도 알지 못해 억울함이 더했다. 요즘엔 연구비 삭감 조치가 사실은 ‘재조정’이었고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의사들과 달리 별 저항없이 고분고분했으니 내년부터는 본래 수준의 연구비로 ‘재-재조정'해준다는 말도 들려온다. 억울하게 단체기합을 받은 게 아니라 그 동안 문제가 많았던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느슨한 정신상태를 바싹 조이는 재조정 과정을 한번 거친 뒤 연구비를 복원해준다는 말로 들린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이 사육되던 공간의 이름이 ‘매너농장' 에서 ‘동물농장'이 되었다가 다시 ‘매너농장'이 되고,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구호가
09.04
“작년 말 세계적 권위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우리 경제 성과를 OECD 2위로 꼽았고, 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은 우리 국가 경쟁력을 역대 최고 순위로 평가했다. 지난 5월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는 우리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며 한국경제 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 후 참모들에게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블록버스터급’ 경제성과를 국민들이 알아주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서운함이 진하게 읽힌다. 비슷한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외국에 이민 간 한 교포는 “올 때마다 서울이 확 달라져 있다. 스마트하고 세련되고 놀랍다”고 했다. ‘라면의 원조국’ 일본에선 라면공장들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한국 라면들에 밀려 일본 라면 판매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라면 흉
09.03
7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총재의 입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방향을 전환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그전 금통위 결정 때 “(방향전환을) 고민하는 상태”라고 했던 것에 비해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도 ‘기준금리 인하시기를 검토’라는 표현을 넣음으로써 시장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8월 22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는 또 다시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13번째 동결했다. 극심한 내수침체에 시달리는 자영업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의 실망이 컸을 것이며,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고금리를 내수침체의 핵심요인으로 꼽은 국책연구소들의 경제진단도 머쓱하게 만들었다. 여당 정책위의장 등 정치권이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말하고 대통령실까지 “내수를 진작한다는 측면에서 아쉽다”고 유감을 밝혀 이례적으로 금리인하 요구를 감추지 않았다. 통화정책이 경직적이라고 비난함으로써 경기부진
09.02
집권에 성공한 정치권력은 늘 방송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 정권의 차이는 거의 없다. 방송을 손에 넣었으면 하는 그 굴뚝같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만 있지 않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까지도 다를 바 없다. 일이 조용히 진행되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아 파열음이 나오더라도 권력은 기꺼이 감수한다. 정권을 유지하는데 방송은 그만큼 중요한 도구라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취임 초부터 방송 재편을 위한 모종의 수를 동원하고 전방위적으로 작전을 벌여 끝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를 두고 여권은 ‘방송의 정상화’라고 표현하고 야권은 ‘방송 장악’이라고 비판한다.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는 정권교체가 몇 차례 있었지만, 여당일 때 ‘정상화’를 외치던 세력이 야당이 되어선 ‘장악’이라며, 또 그 반대 입장에서 앙앙불락하는 데칼코마니 같은 패턴은 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정권 잡은 세력이 방송을 ‘정상화’시키겠다며 동원하는 모종(某種)의 수라는
08.29
40년 전 대학원생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유럽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시민인 언어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데 한국말을 한국에서 자란 사람처럼 구사했다. 이 분은 IBM의 초기단계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라 펜실베니아대학교에 단기방문 중이었다. 일상언어의 유형인식(pattern recognition)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구사하는 많은 언어들 중에 한국말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다. 그가 들었던 예가 지금도 기억난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영국사람은 “도와줘(Help me)”하고 소리친다. 프랑스사람은 “나좀 봐(A moi)”하고 소리친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소리친다. 위급상황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인류애에 호소하는 한국사람의 사고구조를 컴퓨터나 로봇이 체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기체류가 끝나고 떠날 때 그가 한 말은 인공지능을 언어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08.28
우크라이나에 대한 첫인상은 모스크바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과거 오랜 역사 동안 러시아와 공산권 소련 지배로 인해 그런 듯했다. 우크라이나는 잘살지 못하는 나라지만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IT로 국가 경제를 키워 보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서 개최된 블록체인 기술 경진대회 기조강연자로 초청을 받아 그 땅에 발을 디뎠다. 러시아의 침공이 있기 불과 1년전 일이다. 이때만 해도 아주 평화롭던 이 나라가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일 줄은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이어 두번째로 국토 면적이 큰 대국이나 일인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 수준으로 유럽에서 최빈국에 속한다. 30여년 전의 한국으로 생각하면 된다. 동남아시아로 치면 인도네시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 산업은 농업이다. 좋은 땅과 기후 덕분에 미국 태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다. 그러나 큰 덩치에 비해 지난 1000년의 역사 동안 남의 지배만
08.27
6.25전쟁 직후인 1953년 9월에 태어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1959년 3월이다. 집안에 신문이 배달되었지만 당시 주로 언론을 접한 것은 라디오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규뉴스를 들으면서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것을 알았고 다음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정시뉴스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 즐겨 듣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의 인기 연속드라마와 스포츠중계였다. 1960년대에 국민이 열광하던 스포츠는 축구와 농구로 이들 경기를 중계방송하던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는 국민들의 스타였다. 당시 필자가 좋아하던 축구선수는 김 호 김정남 이회택, 농구선수는 신동파 박신자였다. 이 시절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는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으며 열광했다. 이른 나이에 정치에 눈을 떴는지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에 뽑히던 극적인 순간을 접한 것도 라디
08.26
광복의 달 8월, ‘친일의 진격’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일협력을 강조하면서 출범한 정부이지만 정권 핵심인사들의 친일 행보, 식민사관 옹호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한참넘어서다.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의 궤변이다.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도 가능하다”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최근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망언을 내놓았다. 친일의 ‘신념’이 넘치는 언사들이다. 눈여겨 볼 것은 그동안 집권세력이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한 25개가 넘는 역사관련기관에 친일 뉴라이트계 인사들을 꾸준하게 꽂아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급기야 광복절 직전 국민적 반대를 뿌리치고 뉴라이트계 김형석씨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다. 정부가 “우리도 다 계획이 있다”는 듯 친일의 학문 체제를 굳히겠다는 결의를 밀어붙인 셈이다.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친일의 약진, 역사쿠데타라 할만한 ‘사변’이다
08.22
윤석열 정권의 유일한 치적으로 ‘만(滿) 나이’ 법제화를 꼽는 이들이 있다. 출생일을 0살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1살씩 더하는 나이 계산법이다. 관련 민법과 행정기본법이 2023년 6월28일부터 시행됐다. 그러자 시민들은 “깨어보니 한 살이 젊어졌다(혹은 어려졌다)”고 했다. 글쎄다. 가는 세월이 야속한 이들은 즐거웠을까. 하루 빨리 성년이 되고 싶은 청소년들은 어땠을까. 만 나이가 정착하는 한편에선 “갓난아이가 0살이 뭐냐, 몇달 몇일로 나이를 계산해야 하느냐” 볼멘 소리도 없지 않다. ‘우리 나이’와 헷갈리면서 만 나이인지 확인해야 했다. 자연히 나이 대신 “xx년생”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늘었다. 만 나이가 불편한 이들은 선대의 생명존중 프로라이프(pro-life) 정신 때문일 것이다. 잉태된 순간부터 생명체로 인식한 사고체계 말이다. 태교(胎敎)를 중시하고 태명(胎名)도 지은 선대들이다. 그래서 280일이 지나 세상에 나온 아이를 1살로 여긴 거다. 그런 점에서
08.21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정인보가 가사를 쓰고 작곡가 윤용하가 곡을 붙인 ‘광복절 노래’다. 1949년부터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불렀다. 광복절 노랫말을 음미한다. 일본제국주의 식민 지배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이다. 이 시대 한국인들은 흑암의 일제 40년 역사의 증거이자 증인이다. 일가친척이나 가족 중 누군가는 매국노, 징용, 정신대 등 일제의 동조자이거나 피해자이다. 친일파, 독립운동가와도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인이자 기록자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몸과 마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덮고 보듬었다.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08.20
코로나19로 비즈니스 세계가 겪은 새로운 경험 중 하나가 온라인 회의와 재택근무의 보편화이다. 이전에는 지극히 예외적이었던 원격근무가 뉴노멀(new normal)이 되는 듯했으나 코로나19가 진정된 후에는 많은 기업들이 다시 전통적인 '9 to 6' 근무형태로 복귀하였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전통적 근무 형태와 재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혼합)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재택과 하이브리드는 직장에서 소수 약자에 대한 미묘한 인신공격을 줄이고 조직 내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증진시킨다. 업무유연성(flexibility)과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높여 종업원의 만족도와 생산성을 증진시킨다. 종업원이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기 쉬워 효율과 업무 집중도를 높인다. 또한 출근을 포함하여 이동의 필요성을 줄여 시간 절약 뿐 아니라 회사의 탄소발자국을 감소시켜 다양한 의미에서 ESG 성과를 개선하는 지속가능경영의 중요한 경영수단이 된
08.19
한일관계사에서 유명한 ‘구보타 망언’은 악랄했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조선인에게 은혜를 베푼 면이 있다. 일본은 36년간 많은 이익을 한국인에게 주었다. 일본이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에 점령돼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한일협정 일본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는 1953년 이 발언으로 협상 테이블을 엎어버렸다. 그 뒤 한일회담은 4년 반 동안 열리지 못했다. 한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구보타 같은 인식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잠재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구보타 망언’ 닮은 뉴라이트 역시관 구보타의 발언은 요즘 한국의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닮았다. ‘일제가 다리를 놓아주고, 철도도 깔아주고, 공장도 세워주지 않았나’라는 친일 학자·정치인들과 같다. 일본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 한국인의 토지를 빼앗고 마음대로 개발했다. 대륙 진출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도로를 닦고 공장을 세웠다는 건 친일파가 아니
08.14
올해 광복절 제 79주년 기념행사가 일제강점과 친일을 비판하는 독립운동 유관단체 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의 한판 승부의 장으로 돌변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어제와 그제 국내언론에서는 보수 진보지를 막론하고 ‘두쪽 난’이라는 표현이 1면 타이틀을 차지했다. 민족 최대 기념일인 8.15광복절이 이런 형용사를 달고 창피스러운 꼴이 된 건 건국 이래 처음이다. 광복회를 비롯한 25개 독립운동가선양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과 야당들은 정부가 독립기념관 관장에 김형석 고신대 석좌교수를 임명한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정부의 광복절 기념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김 관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발언 등으로 뉴라이트라는 지적을 받았다. 본인은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이종찬 광복회장은 ‘밀정’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런 가운데 독립기념관도 개관 37년 만에 처음으로 자체 광복절 경축식을 돌연 취소했다. 김형석 관장이 15일 정
08.12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은 트럼프-해리스 대결로 압축됐다. 해리스의 뒤늦은 추격으로 여론조사에서는 예측불허의 양상을 띄지만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 여전히 높아 보인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미국 국정의 전방위에 걸쳐 변화가 일어날 터인데 관심사의 하나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기조로 한 기후에너지 정책이다. 트럼프는 기후에너지 정책에서 바이든과 대척점을 유지해왔다. 그는 바이든이 지구온난화를 경감하기 위해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산을 골자로 해서 만든 ‘인플레감축법’을 사사건건 비난하며 물고 늘어졌다. “백악관에 다시 돌아가는 날 바로 전기차 연방보조금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195개국이 모여 만든 2015년 파리협정을 ‘중국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전기차 보급은 ‘중국을 배불리는 일’이라고 반대논리를 폈다. 파리협정은 오바마 민주당 정부가 주도권을 발휘해 어렵게 합의한 국제조약인데, 트럼프는 2017년 취임하
08.08
22세 안세영의 분노가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직격했다. 금메달을 딴 원동력이 협회에 대한 분노였다고 외쳤다. 일시적 서운함이 아니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2018년부터 별렀다고 했다. 충격파는 기득권에 취한 체육계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그는 부상한 선수에 대한 관리와 전 근대적인 훈련방식에 실망했다고 했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릎을 다쳤을 때 협회에서 소개한 병원에서 재활기간을 2~5주로 잘못 진단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보니 올림픽때까지 통증을 안고가야 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협회는 이런저런 대회에 출전을 강요하면서 선수의 부상에 무신경했다는 거다. 잔치를 준비하던 협회는 난장판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안을 들여다보겠다고 하고, 용산도 인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소셜미디어에는 협회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들끓는다. “선수는 이코노미, 임원은 비즈니스석”이란 폭로부터 선수 선발과정의 적정성, 나아가 안 선수의 해외이주설까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