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지기 섬마을 친구들 회갑 여행이 이별여행
승무원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 17명 중 5명만 생존
280여명에 가까운 탑승자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가운데 안타까운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뜨거운 음식을 조리하다 화상을 입는가 하면, 의자와 책상이 덮쳐 가슴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승무원 박지영(22)씨는 학생들을 살리고 죽음으로 발견됐다.
배는 겉으로 보기에는 2시간 가까이 가만히 서있는 듯이 보였지만 배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흔들리는 듯 하던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쏟아지는 물건들은 모두 흉기로 변했고 부상이 속출했다. 다급한 마음에 소화기로 창문을 깨려해도 남자의 힘으로도 깨지지 않았다. 배 안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의 현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60살 회갑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던 초등학교 동기생들의 생사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54년 말띠생들인 이들은 환갑을 맞아 17명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다.
인천 앞바다의 섬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아버지 때부터 잘 알던 사이였고 섬마을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평생의 친구로 지내오며 일년에 몇 번씩 꼭 모였고 부부동반 모임도 자주했다. 이들이 60살을 맞아 떠난 제주도 여행은 다시 보지 못할 이별여행이 되고 말았다.
출발부터 조짐이 있었다. 15일 오후 6시 30분에 출발키로 했던 배가 안개로 출항이 미뤄지자 환볼소동이 있었고 일부 승객들은 환불을 하며 떠났다. 이들도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출발하기로 하고 취소를 하려던 차에 출발하겠다는 안내를 받고 마지못해 배에 올랐다.
무사히 하룻밤을 보냈지만 다음날 아침 식사 후 객실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 순식간에 한쪽으로 몰리면서 사람끼리 엉키고 아수라장이 됐다. 와중에 친구들은 도와가며 억지로 방문을 열고 나왔지만 객실을 나온 복도에는 이미 기울어진 한쪽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찌할 바 모르는 와중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나왔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모두들 격려하며 기울어진 복도와 객실바닥을 간신히 부여잡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승무원들은 어떤 조치도 없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구조는 오지 않았고 물은 계속 차 올랐다. 객실 밖 복도에 있던 강 모(60)씨 등은 중심을 잃고 70도 이상 기울어진 배의 한쪽으로 5~6m 가량 추락하기 시작했다. 강씨도 떨어진 벽면에 머리를 부딪치며 크게 다쳤다. 머리를 타고 얼굴에 피가 흘렀다.
객실안에서 영문을 모르는 친구들은 소리를 질렀다. 이미 물은 비상구를 타고 반 이상 차오르고 있었다. 입구가 어딘지도 모른 상태에서 정신을 잃은 강씨는 피를 흘리는 와중에 물속으로 빠졌다. 죽음인가 싶었지만 간신히 구명정에 구출될 수 있었다. 구명정에서 옮겨진 배에는 친구 김 모(60)씨가 있었다. 이 둘 외 3명이 더 구출됐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왔지만 생사가 확인된 친구들은 모두 5명 뿐이었다. 12명의 친구들과 갑자기 생이별을 한 강씨는 '제자리 지키고 있던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다"며 허탈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목포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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