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 아껴뒀다 애 찾으면 울어야지"

2014-05-02 11:23:00 게재

팽목항 찾은 유가족 "먼저 찾아 미안해요" … 최고의 덕담 "내일은 나올거야"

"기다려야지, 조금만 더. 애가 누구 믿고 나오겠어. 엄마 믿고 나오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아들 딸을 보내야했던 세월호 침몰사고의 희생자 가족들이 팽목항에서 눈시울을 적시며 한마음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1일 오후 4시 단원고 유가족 180여명은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안고 떠났던 사망학생 학부모들이 진도 팽목항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들이 온 이유는 단 하나, "먼저 찾아서 미안한 마음"과 "빨리 찾도록 힘내라"라는 응원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9시쯤 안산 단원고 운동장을 출발한 5대의 버스는 오후 4시를 넘어 팽목항 현장에 도착했다. 단원고 유가족들은 준비한 피켓을 들고 하나 둘 버스를 내렸다.

'보고싶다 얘들아 사랑해', '늑장대응 책임져라', '정부는 우리 아이들을 죽인 살인자' 등 구호들이 적힌 피켓들을 모두들 하나씩 손에 들었다. 맞춰입은 흰색 티에는 '미치고 답답한 우리 부모마음 기다리다 죽겠다', '너무 춥잖아 얘들아, 빨리 돌아와', '도와주세요. 우리 아이들 구해주세요'등의 글귀들이 앞뒤로 빼꼭히 적혀있었다.

줄을 지어 이들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팽목항 정 중앙 유람선 접안시설에 위치한 '가족대책본부' 텐트였다.

하지만 의외의 대접이 이어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들을 가족대책본부 안으로 안내하지도 않았고 소리쳐 반기지도 않았다. 얼싸안고 울음이라도 터뜨릴 줄 알았건만 그런 장면도 없었다. 그렇다고 싫다는 것도 아니었다. 한 실종자 가족이 "찾아와서 감사한 마음이긴 하나, 눈 앞 바다 한 가운데 자식이 빠져 있는데 반겨줄 여유가 없는 걸 알아달라"는 말에 이들의 심정이 담겨있다.

반길 줄 알고 찾아온 게 아님을 알기에 단원고 유가족들은 모든 걸 이해하듯 텐트 옆에서 피켓을 들고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다거나 모욕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자식을 애타게 찾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어서다. 생존은 커녕 시신이라도 찾고자 하는 마음은 겪지 않고서는 모른다. 지난 30일 오후 진도 체육관을 찾았던 천안함 유가족들도 "계모임에서 자원봉사 온 것"이라며 조용히 청소만 하다 간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들이 찾은 가족대책본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는 심정으로 현장 구조 진행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곳이다. 구조현장의 바지선에서 실시간으로 구조 진행상황을 무선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오후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을 이곳에 주저앉히며 6시간 항의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화이트보드에는 10~20분 단위로 잠수사들이 몇 명이 투입되고 언제 철수했는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 진행상황이 궁금한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시신을 구조한 상황도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곳이다.

이 자리가 얼마나 엄숙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임을 아는 단원고 유가족들은 모두들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피켓을 들고 애타는 마음으로 얼마전까지 자신들이 머물렀던 팽목항을 한바퀴 돌며 목청껏 외쳤다.

"첫번째도 구조, 두번째도 구조", "제발 내 아이를 살려내라" 숙연하던 팽목항에 이들의 함성소리가 울렸다. 팽목항 우측 끝에 있는 시신확인소 옆을 지나자 이들은 모두 멈춰섰다. 자신들의 아이들을 이곳에서 확인했던 곳이다. 차가운 시신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통곡을 했던 자리다. 다시 그 생각이 났던지 모두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들도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진도 팽목항 현장에서 이들은 모두 자식 잃은 부모들이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이나 먼저 시신을 찾은 유가족들이나 이들 모두 희생자 가족들일 뿐이었다. 생존자 한 명 없이 자식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허망하게 넋놓고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겪은 아버지, 어머니들이었다.

이들은 자식의 시신을 확인한 팽목항에서 세 시간을 머물렀다. 실종자 가족들과도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반겨주지 못해 미안했다. 이해해 달라"고 실종자 가족이 이야기하자 "아니야. 우리 아니면 누가 위로하냐"고 답하며 서로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셨다.

팽목항 현장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이미 눈물이 없다. 너무 많이 울어서다. 위로의 말에도 "쥐어짤 눈물도 없다. 쥐어짜도 이제 안나온다"는 한 어머니는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주니 불현듯 눈물이 흐른다"며 흐느꼈다. "내일은 꼭 나올거야, 눈물 아껴뒀다 애 나오면 울어"라는 말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덕담이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7시, 떠날 시간이다. 모두들 저녁을 먹자는 말도 없고 먹지도 않았다.

타고 온 버스에 몸을 실러 가는 이들을 보며 한 어머니는 떠나는 손에 빵조각 몇개를 쥐어주고 있었다. "저녁도 대접 못하고 미안해. 줄 게 이거밖에 없네. 갈때 먹어" 쥐어주는 손을 서로 꼭 쥔다. 이들이 떠난 자리 "우리 모두 남겨두고 가면 이제 또 휑하겠다"며 한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셨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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