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취약가구 지원 시스템' 작동 안해

2022-08-10 11:20:37 게재

예방체계 갖추고도 사고 못 막아

"사람생명 살리는 데 초점 맞춰야"

신림동·상도동 반지하 사망사고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막을 수 있는 인명피해였기 때문이다.

10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침수취약가구지원서비스는 가옥이 침수된 경험이 있거나 침수에 취약한 가구를 선정, 가구당 공무원 1명씩을 연결해 일대일로 관리하는 체계다. 공무원들은 평소엔 펌프, 물막이판 등 수해 예방시설 사전점검, 수해 시 행동요령 홍보 등 일상활동을 하지만 호우가 예상될 경우 취약가구와 비상연락을 취하거나 직접 현장에 방문하는 등 단계별 대응방침에 따라 전담가구를 관리하도록 되어있다.

피해복구 나선 상인들 |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9일 침수 피해를 입은 동작구 사당동 남성사계시장 상인들이 집기 등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문제는 인명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좋은 제도를 갖고 있음에도 막상 폭우가 닥쳤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림동 일가족 3명 사망사고의 경우에도 침수취약가구지원서비스 담당 공무원이 아닌 119에 구조 요청이 먼저 접수됐다. 신림동 사고는 인근 119구조차량과 대원들이 침수 피해가 먼저 발생한 곳으로 모두 이동한 바람에 타 지역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때문에 출동시간이 46분이나 걸리면서 화를 키웠다. 만약 해당 서비스 담당 공무원에게 구조 요청이 서둘러 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현장에선 제도 시행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호우 피해는 자주 벌어지지 않는 사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상이 되는 주민들은 평상시 담당 공무원 전화에 건성으로 대꾸하기 일쑤다. 비상시에 대비해 전담 공무원 휴대전화 번호까지 모두 공유하지만 노년층이 많은 취약가구 특성상 번호 저장과 연락이 수월치 않다. 한 자치구 공무원은 "평소에 예방점검 차 연락을 드려도 귀찮아 하시는 분들이 많고 큰 호우 피해를 겪은 지 오래되다보니 방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반시설 보강이 능사 아냐 =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난안전대책 일순위를 시민생명 보호에 둔다면 관련 관련 서비스를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전문제 전문가인 조성일 대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전 서울시시설공단이사장)은 "침수피해 예방을 위한 하드웨어 보강도 중요하지만 재난안전 대책의 핵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며 "글로벌 5대도시를 지향한다는 서울에서 홍수가 났다고 사람이 죽어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조 소장은 "시민생명 보호를 최우선에 둔다면 지하빗물터널 등 하드웨어 보강도 필요하지만 이미 갖춰진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게 더 급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침수취약가구지원서비스는 2014년부터 시행됐다. 자치구 공무원이 취약가구 1곳씩을 전담하고 긴급한 경우 취약가구 근처에 사는 자원봉사자가 결합하기도 한다. 자치구에선 제도 설계와 취지는 좋지만 제 역할을 하려면 서울시 차원의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치구 한곳당 수십명에 불과한 침수취약가구 관리 대상도 전수조사를 통해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 대상자 선정 기준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선정 기준에 이미 침수방지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등 오히려 제도 취지와 역행하고 있어 대상자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동주민센터에서 추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수조사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대상자를 발굴, 연락이 수월하게 되도록 점검하는 한편 비현실적인 선정기준을 고치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도 활용도 미진하다. 시행 첫해인 2014년 서울시 전체 침수취약가구지원서비스 대상은 9434곳, 돌봄공무원은 6326명이었다. 하지만 2021년 기준 대상가구는 4170곳으로 절반 이상 줄었고 담당 공무원 수도 3523명으로 감소했다.

서울시 사정에 밝은 한 방재전문가는 "한 시간에 100㎜씩 내리는 비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된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고 우리보다 강우량이 훨씬 많은 일본 도쿄도 시간당 75㎜를 견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예산 문제, 시설 확충 논의는 방재대책의 외형적 측면일 뿐 시민생명 보호와 직결되지 않는다"면서 "재난안전대책의 최우선 목표를 시민생명 보호로 못 박고 이번처럼 반지하 등 취약층이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도록 약자 중심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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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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