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사진에 온통 ‘마스크맨’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요”

2019-03-06 11:29:51 게재

개학 첫 주, 학교마다 공기청정기 문의 쇄도

창문필터 등 공기정화 아이디어 인터넷서 공유

‘집콕’도 한계 … 미세먼지 피해 해외로 피신도

“유치원 입학이라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갔어요. 단체 사진 찍는데 벗지도 못하고. (중략) 착하게 마스크 쓰고 있는 딸이 고맙고 미안하고 왜 아이가 고통받아야 하는지 분노가 치미는 하루였네요.”

회원수 9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에는 최악의 공기질 속에서 유치원.학교 입학식을 하고 온 엄마들의 후기가 주초부터 이어졌다.

수도권에 6일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쓰고서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한 엄마가 입학식 후기를 쓰자 각지에서 입학식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하고 온 부모들이 연이어 댓글을 달았다. “너무 속상해요. 눈물 나네요” “저도 오늘 등원시키고 울면서 왔어요” “사진이 전부 마스크맨이에요. 입학식만 하고 이틀 결석했어요” “저도 안 보내고 싶은데 적응기간이라 빠지면 나중에 더 힘들대요” “미래의 우리 아들 이야기네요. 언제까지 집콕(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머무는 것)을 해야 하는 건지요” “학교에 내는 기초환경조사서에 미세먼지 좀 신경 써 달라고 썼어요”

미세먼지 농도가 사상최고치를 찍는 등 숨 쉬기 어려운 날이 이어지면서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이 크다.

유치원과 초중고교는 이번 주 새 학기를 시작했지만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지원(39)씨는 “둘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아이 말을 들어 보니 학기 초인데도 미세먼지 때문에 학교에 안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면서 “맞벌이라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낼 수도 없고, 아이 건강은 걱정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윤민영(35)씨는 가뜩이나 학기 초라 바쁜데 공기청정기 설치 여부를 묻는 부모들의 전화.문자 문의 때문에 더 정신이 없다. 윤씨는 “학기 초에는 원래 문의가 많긴 하지만 요즘엔 학교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런 것보다 교실이나 체육관에 공기청정기가 설치돼 있는지 물어보시는 부모님들이 더 많다”면서 “학기 초 안내문이 나갈 때 아예 공기청정기에 대한 안내를 해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고 했다.

각자 알아서 아이들과 가족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선 실내 공기를 정화시킬 수 있는 온갖 제품을 검색하는 게 일이다. 고가이긴 하지만 미세먼지를 잘 잡기로 유명한 독일산 공기청정기가 ‘청담동 공기청정기’로 입소문을 타는가 하면 창문에 설치하는 창문필터, 강제환기키트 등 각종 공기정화 아이디어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인터넷 문의글도 넘쳐난다.

실제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연속해서 나쁨을 기록한 지난 달 20일부터 이달 3일까지 미세먼지 관련 상품 매출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공기청정기는 2.5배, 마스크는 3.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건조기, 손소독기, 창문필터, 미세먼지 측정기 등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아예 해외로 피신을 가는 게 정답이라는 댓글도 심심치않게 눈에 띈다. 공기가 맑은 캐나다 등에서 한달 살기 등을 추천하기도 한다.

정부 대책을 요구하며 직접 행동에 나서는 부모들도 있다. 네이버 카페 미대촉은 다음 달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연다. 지난해 말에도 집회를 열고 미세먼지를 사회적 재난으로 지정해 달라는 등의 요구안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러나 미세먼지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환경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가지 않고 각자도생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오히려 악순환을 부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대책도 환경 인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교내 공기청정기 설치 등 일시적인 회유책 위주라는 점도 이같은 분위기를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는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학교를 보내도 되는지, 놀고 싶어 하는데 밖에서 놀게 해도 되는 건지 다들 걱정이 많다”면서도 “미세먼지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에너지 문제인데 미세먼지 대책이 결국 공기청정기 사고, 건조기 사고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일시적으로 실내공기를 정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어차피 실내에만 머물 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같은 미세먼지 대책으로는 답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 대표는 “정부도 공기청정기 설치 등 돈 쓰는 방향으로만 대책을 내는데 이는 회피성 또는 회유성 정책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미세먼지를 부르는 에너지 정책의 전환이나 환경에 대한 인식 교육에 돈을 써서 시민들이 자기부터 에너지 절감을 해야 공기가 나아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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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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