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학기제로 날다│17 전북 전주 근영중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진로체험과 연계"
뻔한 직업체험 도움 안돼 … "미래직업 체험,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길…"
"우리 역사에 대한 설명이 왜 책마다 다른지 모르겠어요. 고조선이나 한사군설치 문제만 해도 학자마다 시각이 다르니 뭐가 진실인지 궁금해요." 전주 근영중학교 라석호(2학년6반)군은 지난해 2학기(자유학기제)동안 평소 관심분야인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1학기 학교수업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고조선의 수도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 쪽일 가능성에 대해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고조선에 관한 새로운 학설들은 라 군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라 군은 "역사는 과거지만 미래이기도 하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특히 독도를 둘러싼 일제 강점기 한반도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라 군의 호기심천국은 학생요구 중심의 선택 프로그램 교육과정에서 더욱 커졌다. 생각하는 힘이 강해졌고, 토론수업을 통해 꿈과 자신만의 논리를 키워나갔다.
근영중학교는 자유학기제 희망학교지만 연구학교 못지않게 운영안을 설계했다. 기획 및 총괄, 교육과정 운영, 수업개선을 위한 교수학습, 진로프로그램, 평가 및 검증방안을 마련하고 학생중심으로 운영했다.
공동체 연수와 자유학기제 홍보를 23차례나 진행했다. 학부모 지원단을 구성하고 학년 협의회, 지역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모든 프로그램은 학생요구 중심으로 설계하고 정성과 흥미유발, 소외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도록 추진했다.
◆"꿈이 현실로 보이기 시작" = 학생들은 국어시간에 과학수업을 하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드름의 뜻과 여드름이 생기는 원인과 과정, 예방방법을 학습하고 나니 글에 사용된 설명방법이 쉽게 이해가 됐다. 이어 생명과학연구원이나 피부관리사, 임상병리사를 통해 여드름 관련 진로체험까지 연계시켰다. 자신의 진로나 미래에 관련한 것들을 발표한 후 소개 글을 영어로 쓰거나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제가 손재주가 좋다는 것 알고 나니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이주연(2학년4반)양은 피부과 의사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 양은 "꿈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꿈이 있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양은 자율과정 시간에 인형극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더 가까워졌다.
UCC 동영상을 만들거나 환경관련 소설, 선생님이 권해준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자유학기제 동안에 환경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쩍 늘었다.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찾은 학생들은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생태계 체험과 환경공부에 푹 빠졌다.
민정재 부장교사는 "국립생태원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좋은 생태계 체험뿐 아니라 환경교육에 손색이 없다"며 "질 높은 시설을 찾아 직접 체험하는 공부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미래 직업 설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근영중학교 진로탐색여행은 무작정 외부 기관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출발 전에 사전 준비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자아탐색, 진로탐색, 비전세우기 영역으로 나누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먼저 '나를 소개하기'를 시작으로 '나의 멘토'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꿈 계획' 등을 통해 자아탐색 영역을 설계한다. 다음 내가 희망하는 직업이나 하고 싶은 일, 흥미로 본 직업군 찾아보기, 나의 직업 가치관 등 나에게 맞는 진로탐색에 나선다.
이를 통해 꿈과 비전, 미래 직업에 대한 가상의 목표를 설정한다. 미래의 나를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사전을 만든 후 발표회를 열었다.
강세은(2학년8반)양은 "자유학기제 수업을 하면서 학교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방병원 진로체험은 제 꿈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강 양은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배우거나 토론한 내용들을 진로체험과 연계할 수 있어서 효과가 좋았다는 게 교사와 학생들의 반응이다. 자유학기제 자율과정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만족55%, 보통 35%, 부정이 10%를 차지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 생겨" = 자유학기제 방식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모들 은 자녀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에 대한 우려와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박수옥(48.학부모)씨는 "지난해 2학기 동안 딸(이정은)에게 스스로 공부하려는 습관이나 리더십이 생겼다. 그래서 고민 없이 정은이 남동생도 근영중학교에 보냈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가 좋긴 한데 성적이 떨어질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는 다른 학부모와 달리 박 씨는 딸아이 공부걱정을 별로하지 않는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박 씨는 무엇보다 딸의 변화에 만족한다. 표현력이나 창의성도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은이가 학교에서 '또래상담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는데 친구 고민을 들어주거나 수업시간에 잠자는 친구를 깨워주기도 해 '해결사'로 통한다"며 좋아했다.
박 씨는 딸이 올해 1학년 남동생한테 자유학기제를 설명해주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하지만 체험공간이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부족한 체험처는 학생 교사 모두의 숙제로 남았다. 교사들 역시 올해 자유학기제를 앞두고 부족한 체험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또한 학생들의 만족도를 더 높이는 수업방식과 프로그램 개선은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라석호 군은 "10~20년 후면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는 직업에 대해 알고 싶고 체험도 하고 싶은데 아쉽다"면서 "가상의 직업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도록 체험이나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정재 부장교사는 "충분한 진로체험 공간에 대한 요구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 간절하다"며 "예산문제,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들의 이해와 참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전주 근영중학교는= 바른 가치관 정립, 봉사정신, 미래사회 주도할 창의성, 강인한 체력과 정서적인 품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사자소학, 풋살, 방송댄스 등 40개나 되는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1974년에 창단한 배구부 활동은 근영중학교 역사와 함께 할 정도로 유명하다.
2003년 제주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 하는 등 전국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40여개나 휩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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