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아버지 최태민, 40년 전 박근혜 앞세워 국정농단

2016-10-31 10:52:49 게재

버시바우 미 대사 "최태민이 박근혜 완벽하게 통제" … 박 대통령 "최태민은 고마운 분"

최순실(60)씨가 이용했다고 추정되는 태블릿PC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한 국가 안보와 인사 관련 자료들이 나와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의문도 커지고 있다. 공직과 무관한 한 개인에게 대통령이 왜 이렇게까지 의지했느냐 하는 점이다. 답을 찾기 위해선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되짚어야 한다.

◆대통령 딸과의 친분 이용해 국정농단 = 7개의 이름, 수명의 부인, 다양한 직업, 승려이자 목사 등 복잡한 삶의 주인공인 최태민이 박 대통령과 만난 시기는 1975년이다.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 이후 최태민은 박 대통령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며 육 여사의 뜻을 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최태민은 꿈 얘기에 대해 부인했지만 편지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된 건 분명하다.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맨 왼쪽 하얀모자 쓴 사람)씨가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최태민은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박 대통령은 이 단체의 명예총재가 돼 여러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1976년엔 구국선교단을 포함한 여러 단체들을 통합한 '새마음봉사단'이 결성된다. 박 대통령은 이런 조직을 이용해 '새마음운동'이란 전국적인 정신개조운동을 시작했고, 최태민은 대통령 딸과의 친분을 불법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결국 중앙정보부와 민정수석실의 수사가 이뤄졌다.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이 저지른 횡령, 사기, 이권 개입 등 권력형 범죄만 44건이었다. 이밖에 여성 관련 추문들도 12건이 있었다. 자료에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했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기록이 맞다면 38년 전에도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거의 유사한 구조에서 박 대통령은 '형식상' 업무를 담당한 셈이다.

◆김재규 "10·26 사건 원인 중 하나" = 보고서를 받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최태민을 직접 심문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 등이 참석한 소위 '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정희는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두사람을 떼어놓을 기회를 놓친 꼴이 됐다.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총재 자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넘겨주지만 명예총재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옆에 계속 머물게 된다.

이런 당시 상황은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에겐 큰 불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0·26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그가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 보충서를 보면 '10·26 혁명 동기의 보충'이라는 항목으로 박정희 대통령 가족에 관한 내용을 밝히고 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한 큰영애의 문제'라는 소제목에서 그는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어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읍니다. 중정본부에서 한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나 유신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박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이면서도 "꼭 밝혀둘 필요가 있다"고 다시 강조했다.

이런 입장은 10·26 사건 때 현장에 있었던 김계원 당시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최태민이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근혜양이 최태민은 아주 선량한 사람인데 왜 중앙정보부에서 모략을 해 아버지 생각을 흐려놓냐고 하면서 오해가 생겼다"고 밝혔다.

◆박근령·박지만도 "최태민 벗어나야" = 최태민이 박 대통령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가족들에게서도 나왔다.

동생들인 박근령, 박지만씨는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자필 탄원서를 제출했다.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탄원서에 따르면 "최태민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행위가 폭로될까봐 저희 언니(박근혜)를 방패로 삼아왔다"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해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했다" "공익사업들이 오로지 최태민 휘하에서 최태민 마음대로 움직이고 운영되는 최태민 개인소유물이 되고 말았다"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어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다. 속고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며 "이번 기회에 저희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얘기는 국내를 넘어서기도 했다. 2007년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알렉산더 버시바우가 미국에 보낸 문서는 "최태민은 박근혜의 인격 형성기 동안 그녀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했고, 이를 통해 그의 자녀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다"고 기록한다.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한 의문은 선거 때마다 제기됐고 박 대통령은 매번 의혹을 부인하고 최태민을 옹호해 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아버지(박정희)가 직접 조사했다. 실체없는 이야기로 끝났다"고 답했다. 또 "제가 누구를 만나서 일을 할 때 그 사람이 몇 번 결혼했는지, 이름을 바꿨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당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선 "그 분(최태민)은 목사님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줬다.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어려운 상황일 때 구국기도회 하면서 도와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셨다"며 "저에겐 고마운 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5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최순실씨를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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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기자 ea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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