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성난 민심 폭발

2016-10-31 10:54:17 게재

일반시민·보수세력도 자괴감에 마음 돌아서

대구·경북도 대통령에 배신감·허탈·분노 …

국민들의 상실감과 배신감, 분노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세력들과 그동안 정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반시민들은 자괴감에 힘들어하고 있다. 한 민간인 아줌마에게 국정을 넘기고도 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실과 그를 내가 찍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다며 배신감과 허탈에 이어 분노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대국경북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의 성난 민심은 시국선언과 촛불집회, 자발적인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당신 때문에 너무 아픕니다. 국민을 기만한 당신을 나는 도무지 대통령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29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한 시민이 들고 나온 팻말에 있는 문구다. 그의 손에는 노란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다.


◆대통령 진정성 없는 사과에 더 분노 =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대국민 사과와 단편적인 인사조치는 민심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김포에 사는 강모(52·여)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25일, 마치 을사늑약과 같은 국치일처럼 부끄럽고 참담했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평소 믿고 지지했던 박 대통령이 그동안 말해왔던 내용이 거짓이었다는 점에 심한 배심감을 느낀 상황에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더 큰 분노를 하게 됐다.

최근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박근혜와 최순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주말 서대문구에 있는 한 작은 미용실에서 만난 40에서 60대인 여성들은 미용실에 들어오자마자 뉴스를 보자며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들은 "박근혜-최순실의 이야기가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라며 "요즘은 드라마보다 뉴스를 더 많이 보게된다"고 말했다. 이날 40대라고 밝힌 한 여성은 "우리나라 대통령을 한 아줌마가 머리 꼭대기에서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챙피하다"며 "망신, 망신, 개망신이 따로 없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또 결혼을 앞둔 자녀 상견례 때문에 머리를 하러 왔다는 60대 여성은 "어린 나이에 험하게 부모를 여의고 결혼도 안한 채 혼자 살고 있는 것이 불쌍하고 자식이 없으니 부정축재 등을 할 가능성도 없어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해 박 대통령을 찍었다"며 "그런데 얼토당토않은 남에게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일을 갖다 바치다니 정말 황당하다"며 허탈해했다.

평생 여당만 찍고 지난 선거에서도 박근혜를 찍었다는 한 70대 여성은 그동안 어떤 사건이 있어도 철저한 박근혜 옹호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이번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잘못한 것은 잘못됐다고 국민들이 얘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국민들의 배신감과 분노는 극도로 커지고 있다.

지난 27일 경북대학교 교수 50명과 비정규 교수 38명은 '민주주의를 사수하고자 하는 경북대 교수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고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책임을 지고 하야하는 것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지막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8일 경북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외쳤다. 31일 영남대학교 학생 100여명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주말사이에는 대구의 중심가인 동성로 일대에서도 시국집회가 열리며 많은 시민들이 이에 호응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박 대통령을)그동안 믿고 좋아했다는 사실이 분하고 억울하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 하지만 이번 사태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의견들도 나왔다.

29일 청계광장 집회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은 "그동안 곪고 곪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정치권의 부정부패, 온갖 비리들을 다 도려내고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익산에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왔다는 고등학교 2학년 손 모군은 "이번 일이 우리나라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른들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극복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는 계기로 바꾸면 우리나라가 더 좋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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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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